분류 전체.. (159)
음향, 영상.. (38)
IT,음향장.. (10)
가볼만한곳.. (4)
사랑하는.. (9)
영어.그 머.. (1)
이런 멋진.. (11)
믿음, 신앙.. (9)
음악이야기 (31)
추천도서 (7)
크라바토스 (7)
세상살이 (31)
아카펠라  은평교회  교회음향  인이어모니터링  조립식 책장  셔틀  베어본  녹음  교회  음향 
 недвиж..
└>일상..
 недвиж..
└>일상..
 недвиж..
└>일상..
 недвиж..
└>일상..
 продаж..
└>일상..
«   2017/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278,733
+ Today : 45
+ Yesterday : 147
  

 

 

 

2017년 2월 성가세미나(더블레싱) 참석 후기.
+   [음악이야기]   |  2017.02.13 20:27  

2010년 1월 이직하는 중간 쉬는 짬에 서칭 페스티벌을 참석하여 2박3일 행복한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성가대원으로 몇십년을 하고 여러 합창단, 중창등을 하면서도 정작 이런 세미나에 참석해본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것 같네요. 비전공자, 생업인으로써의 한계이겠죠..


그러다 지난 연말부터 결원이 생긴 성가대를 임시로 맡다가 올해 정식으로 임명을 받아버리는 사태를 당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시간이 맞아버린게 이번 더블레싱 세미나였습니다. 사실 며칠전 보고 바로 신청해서 뭔지 알아볼만한 틈도 없이 그냥 참석했더랬습니다.

하루짜리에서 뭐 얼마나 큰걸 얻겠어? 라는 가벼운 맘으로 참석했었지만 참 귀하게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현 성결교회 1층 홀은 이런 세미나를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할만큼 너무나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합창 공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잔향과 무대 구성, 좌석 배치등은 시범 합창단을 비롯해서 보컬 시범까지도 모두 좋았네요. 리딩세션의 회중 찬양도, 시범합창단의 무대 공연도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제 좌석이 사이드의 가장 앞 자리였음에도 별 불편을 못느꼈네요.


첫 시간 원학연 교수님. -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 상임이시더군요. 

역시나 강연중에도 '우리애들'하는 말씀 자연스럽게 자주 나오시길래 어느분이시길래 했는데 역시나.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비전공자이고 이제 갓 지휘를 맡은 새내기이지만 그간 해온 부지휘로써 해온 파트 연습들과 대타 경험들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동일한 주제들을 언급해주셨기때문인것 같습니다.


1. 아무리 바빠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하자.

2. 시창 연습은 긴 흐름을 가지고 계속 하자

3. 음정을 잡으면 발성도 잡을 수 있다.-개인 발성이 아니기 때문.


특히나 시창(독보)와 무반주 연습을 해서 발성과 음정을 같이 잡자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제가 생각해온 리허설 방식이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되어 얼마나 자신감 충만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합하세의 지휘자 청빙 조건 중에 종종 성악 전공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고, 저희 교회에서 청빙시에도 전공을 성악으로 정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악가를 지휘로 청빙했다고 대원의 발성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또 설사 그러한 성악 발성을 몇사람 가르쳐서 성공햇다고 해도 합창 발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잘 불러준다고 대원들이 듣고 발성이나 음정이 느는것도 아니고요..


지휘자가 잘 듣고 음정을 맞추고 악보를 보고 머리로 생각해서 그 음을 짐작할 수 있고, 몸이 기억하는 음정이 그 음을 낼 수 있도록 하고, 내 소리뿐 아니라 피아노에 끌려가지 않고 내 소리를 내고, 내 주변의 소리를 듣고 피치를 맞추도록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음정 집어서 계이름 불러보는 것은 지난주일부터 바로 시도했고 아주 좋아하시더군요. 이전엔 미리 화이트보드에 음계를 그려놓고 따라 하는것이었는데 원교수님 알려주신 방식으로 하니 아주 수월하고 재밌게 해볼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기는 내년쯤엔 한 옥타브정도는 어떤 조에서도 부를 수 있도록 우리 성가대가 훈련되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두번째 홍정표 교수님.

다른 것보다 5년이 고비다, 10년은 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말씀에 많은 찔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금년 임명 받으면서도 수많은 전공자들이 있고 청빙할 여건이 되는 교회임에도 제가 맡은건 너무 서두르지 말고 버퍼의 시간 동안 맡고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보자는 의미가 있어서 1년 정도만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그게 저에게도 대원들에게도 얼마나 안 좋은 생각이었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능력 밖이 아니라면 적어도 몇년은 이끌어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역시 처음 지휘 시작하실때는 발성 위주로 하였으나 그 성과를 얻는건 엄청 어려웠고 곡과 같이 가야한다는 유사한 말씀을 하셨네요. 두시간 채 안되는 시간에 15곡을 보신다는 리허설에 대한 방식은 사실 쉽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당장 이러한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정도 수준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한시간동안 세곡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ㅠ.ㅠ.

초견을 키워서 파트연습을 줄이자는 제안은 저도 계속 생각하는 바인데 그만큼 실력을 늘리는게 쉽지 않겠죠.. 개교회에서는..

제가 적어놓은 티믕로는 연습템포, 연주템포는 다르니 두가지를 잘 구분해서 리허설을 하고 빠른 노래의 경우 자음이 먼저 튀어나도록 해서 발음이 분명해지고 리듬을 살리도록 ..


세번째 민인기 교수님

대원의 구성을 먼저 말씀하셨는데 이점 역시 제 당면 과제이기도 하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파트의 인원배분은베이스 40 앨토 30 소프라노 20 테너 10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정도면 볼륨으로는 30 20 30 20 정도가 될 것 같네요. 그러나 실제는 10 20 50 20 정도의 볼륨이 저희 현재 상황이라서 이에 대한 배분을 어찌 할지 고민입니다. 특히나 신체구조상 베이스 찾기가 어려운데 음색을 베이스 스럽게 어떻게 훈련할지, 엘토를 엘토음색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건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구요.

두번째 지휘자가 찬양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도 위와 같은 이유로 크게 공감이 갔네요.

악보의 틀에 얽매이지 말자는 말씀에도 크게 동의합니다. 그럴려면 더 공부하고 견문을 넓혀야 할텐데 하는 숙제도 같이 얻게 되었네요.

악상은 처음부터 정하고 가자.

끊었으면 설명을 하라 는 두가지 말씀은 대원들에 대한 배려와 소통의 의미로 가장 중요한 리허설 테크닉과 애티튜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부터는 내용 필기는 안하고 리딩에 집중하느라...


네번째 김보미 교수님.

대단한 카리스마.. 준비해오셔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단은 분명한 소신과 해석을 항상 하실것 같다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역시나 악보에 얽매이기보다 정확한 해석을 하자는 말씀이 기억이 남고, 무엇보다 같이 해준 합창단의 블랜딩이 좋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권영일 교수님

일단 월드비젼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앞자리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소리가 정말 잘 훈련되어있음이 아이들의 입모양을 보고 알겠더군요. 정확한 사이즈, 정확한 싱크의 입모양을 보고 있자니 소리까지도 그렇게 정확하게 나올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반주곡이든 반주곡이든, 율동곡이든 정말 딱 맞는 이유가 이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 중간 공간에 딱맞는 음정에서 증폭이 되는 (배음이 쌓여져서 만들어지는 볼륨감) 소리를 들으면서 전율이 오더군요.

아쉬운건 두곡의 부활절 리딩 시간은 시간부족과 양이 많아서 많이 못 불러보고 못들어봐서ㅠ.ㅠ.ㅠ.


이선우교수님

저희 교회 세미나도 합창단과 같이 오셨고 이전 세미나에서도 강의를 들어서 친근한 느낌이 먼저.. 시간 부족으로 자세히 하지는 못했지만 곡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해석의 유무에 따른 시연도 좋은 시도였던것 같습니다.

몇몇 단원들의 경우는 얼굴이 낯이 익어서 더왠지 친근하게 느꼈던것 같네요.


아쉬운 점.

1. 역시나 전기음향..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음악 세미나에서의 마이크는 애물단지입니다. 반드시 써야하나, 걸리적거리지 않게 사용하기는 어려운.. 이날도 마이크 스탠드의 걸리적거림이나 유선마이크 사용으로 인한 것들로 사소하게 진행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더군요. 다행인건 홀 사이즈가 적당해서 합창에는 확성이 필요없었다는게 천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2. 리딩 세션

모든 선생님들이 시간 분배에 어려움을 겪으신듯.. 특히나 도입부만 불러보고 마는 곡들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핵심이 되는 부분들을 두세군데 볼 수 있었으면 어떨까 싶더군요. 곡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좌석에 대해..

아예 좌석 배치를 파트별로 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 굳이 안 모여 앉아도 크게 불편함은 없는 분들이 참석하시긴 하지만 나중에 먼저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리딩에서 발란스 잡기가.. 파트별로 모여 있으면 웬지 모를 동질감도.. 

그리고 특히나 여성분들은 워낙 소프라노가 많아서 앨토 음듣기가 어려워서 아쉬웠습니다. 파트별로 앉으면 강제라도 앨토를 해주시기 않았을까 하는 ..


2.5만원 내고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해주신 분들에 감사하고 함께 하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 그렇네요.

여튼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피곤 풀어야 하는 주말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음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2월 성가세미나(더블레싱) 참석 후기.  (0) 2017.02.13
허밍이 좋은 이유.  (0) 2008.11.27
노래만 하고 싶다.  (0) 2008.10.21
성악의 명언  (0) 2008.08.11
인체구조도  (0) 2008.07.26
발성, 그 득음의 길을 향하여..  (0) 2008.07.01

 
 
     0   0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   

 

 

십일조에 대한 박윤선박사의 연구 논문
+   [믿음, 신앙, 교회]   |  2016.09.19 13:38  

최근 들어 집안에서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인 부딛힘이 있었다. 물론 다들 잘 이해하고 합의가 되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지금 세대에서의 십일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한번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좋은 글을 보게 되어 옮겨 놓고자 한다.


박윤선 목사님이 1950년대에 노회에 제출하고자 작성한 이 작은 논문을 읽고 있자니 정말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였을 당시의 신학풍이 작게 나마 느껴지고 오히려 작금의 교회 신학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까지도 느끼게 되었다.


------------------------------------------------------------------

제목: 십일조 헌금과 그 사용방법에 대하여

이 작은 논문은 지난 번 부산 노회시에 노회원들 중에서 질문한 문제를 해답하기 위한 것이다. 노회의 부탁으로 이 연구를 발표한다. 그 질문 내용은 이렇다. 곧

문 의 서

주후 1956년 9월 4일

문의자 씨 명(약)

 

부산 노회장 귀하

하기와 같이 문의하오니 성경적으로 지시하여 주심을 경요하나이다.

교역자 및 교인의 십일조 헌금으로 본 교회에만 전부 헌금하는 것이 가한지 혹은 하기 사항에 사용하는 것도 가한지 지시하여 주심을 요망하나이다.

1. 교회 월정 헌금

2. 교회 주일 헌금

3. 성전 건축 헌금

4. 개인 구제 헌금

5. 개인 특별 감사 헌금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답함이 좋은 줄 안다.

 

1. 십일조 헌납은 구약 시대에 신정국가의 하나의 제도화한 것이었느니 법령으로 실시하던 것이었다. 그것을 드리는 자가 기쁜 마음으로 실행해야 향기로운 것이겠지만 아니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 난 자를 바치는 것도 아니하면 벌을 받도록 된 것이다(출13:13).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신약의 시대의 연보는 신정국가의 법령으로 실행시키는 것이 아닌 만큼, 자원하여 내는 것이다(고후8:1-15, 특히 11절 참조)

 

2. 십일조를 사용하는 목적은 주로 (1) 레위 족속과 제사장들의 생활비를 제공하기 위함(민18:24,26,28). (2)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같은 외로운 자들을 구제하려 함이다(신14:22-27). 그러므로 신약 시대도 신자가 연보의 일부를 가지고 빈자나 외로운 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롬15:25-26).

 

3. 이제 다시 생각할 문제들이 있다. (1) 신약의 시대에 연보하는 자가 그 소산의 십분지 일이란 수량을 유일한 표준으로 할 것인가? 십분지 일이란 수량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바친 수량이었고(창14:20)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 족속에게 그렇게 바쳤으니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이상적 수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교회는 신정국가의 법령으로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고 의문과 기타 외부적 의식의 제재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초월하게 된 영적 단체이니 만큼 십분지 일이란 수자의 법령적 제재는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십분지 일이라는 수량이 이상적인 수량이니 만큼 그것을 신약 시대 신자들도 자원하여 표준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교리화하거나 제도화할 것은 아니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원하여 소득의 십분지 일 이상도 하나님께 바침이 좋을 것이다(고후8:1-15). 교회는 신약 교회는 교인들이 연보하는 일에 십일조 혹은 십일조 이상을 강요하거나 표준을 세워 지령할 것은 아니다. 장로교 예배 모범 제 18장 4조에 말하기를 "목사마다 자기 교회가 감심으로 헌금하는 습성을 배양하는 것이 마땅하니 신도마다 다소를 물론하고 자기 힘 있는 대로 바치게 할찌니라"고 하였다.

 

(2) 신약 시대의 신자가 자기가 드릴 연보 수량(십일조 혹은 기타 수량)의 사용 목적을 자의 대로 생각하고 또한 자기 목적에 따라 활당하는 것도 자유로 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장로교 예배모범 18장 3조가 대답한다. 거기 말하기를 " 그 수납금은 당회의 감독하에서 교회 각 대리국과 기타 자선 사업과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분배할 것이니 분배 다소와 일체 계획은 시시로 의결하되 혹 헌금하는 자가 특별한 소원히 있을 때에는 그의 원을 따라 삼가 실행할찌니라"고 하였다. 요컨대, 신약 시대의 연보는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자가 자의대로 또는 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고후8:11). 구약 시대에는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게 되어 있었으니만큼(요4:19-21) 외부적 제도에 치중하였다. 그러니만큼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헌금에 외부적 제재를 방았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신자들은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또는 어디서나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할 수 있다는데(요4;22-24) 치중한다. 신약 종교는 보다 더 영적인 것인 만큼 신자의 개인적 자유를 존중시하며(고후3;17) 자기 혼자도 하나의 성전인 사실을 성경에서 알고 있다(고전 3;16-17,6:19-20,롬12:1-2).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에서 어떤 개인들(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일종의 연보 행위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교회를 통하여서만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 친수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 것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다(행10:1-4). 잠19:17절에 말하기를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잠17:5참조. 마10:42에 말하기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바리새 교인이 하나님께 재산을 바쳤다는 미명으로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을 책망하셨다(마15:4-6). 약1:27엔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서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마25;31-46참조.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께 바칠 물질을 가난한 자 구제의 목적(기카 하나님께 바치는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지령없이 사용할 수 있다.

 

(3) 우리는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등한히 하면 안된다. 교회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항존 단체로서 복음을 전하며 보수하는데 가장 믿을만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 전도와 복음 파수를 위하여서도 교회는 이렇게 귀한 기관이다. 그러니맘큼 이 기관엔 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신자가 다른 좋은 일보다 교회에 물질을 바쳐야 된다(눅8:1-3,빌4:18). 구약 시대에도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성전 봉사와 제사장의 생활비로 제공한 것이다. 그만큼 그때의 신자가 하나님께 직속한 거룩한 일을 위하여 물질적으로 힘껏 봉사하였다. 이 일은 고금을 물론하고 원측에 있어선 변하지 않는다. 출23;15에 말하기를 "공수로 내게 보이지말찌니라"고 하였다. 신16:16참조. 신약 시대에도 신자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보 드려야 할 것을 가르친다. 다만 그 수량에 있어서 일정한 숫자 표준은 세우지 않았다.(Cassels Concise Bible Dictionary P.728. under new economy liberality enjoined on christians. No specific proportionof the earnings is mentioned......). 십일조 헌납에 자세하였던 바리새인들에게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종교 윤리적 동기는 없이 외식으로 그러한 점을 꾸짖으셨다. (마23;23, 눅11:42).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 헌납하는 그것은 좋게 여기셨다. 이 점을 보면 예수님의 교훈이 십일조라는 숫자를 표준으로 세우신 듯하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해석하고 읽어야 한다.

 

해석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 (1) 그가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아직 그의 구속 사업이 완성되지 않은 것만큼(죽었다가 다시 살으시기 전이므로) 구약적인 제도를 아직 그대로 옳게 보신 시절이었다. 마8:4참조. 이점에 있어서 놀발 켈덴회이스(Norval Geldenhuysl)의 누가복음 (11:42) 주석 제 342페지를 참조하라.

 

 

(2) 그리고 둘째 해석은, 그 귀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고한 말씀(눅11;42)은 십일조의 바리새식 실행 그대로를 용인하시는 말씀이라기보다 그것에 대한 원측적 실행(숫자를 기계적으로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 정성껏 바침을 의미함) 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을 밝혀 해설한 사도들의 서신들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를 어떤 일정한 수량으로 제도화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의 교훈이, 십일조와 같은 구약의 예식적 규례도 아주 폐지하시지는 않고 그것에 대한 신약적 실행(즉 원측적 실행)을 필요시한 것은 사실이다(H.N. Ridderbos, De Komst Van Het Koninkrijk .p.264-265).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74   0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   

 

<<이전 | 1 | 2 | 3 | 4 | 5 ... | 80 | 다음>>

아침공기's Blog is powered by Daum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