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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납땜하는거 누가 찍어서 소설 썼어요~~

벌써 3주 전이다. 내가 위 산 지 얼마 안돼서 수동에 갔을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 언덕위 하얀집으로 가기 위해 일단 자가용에서 내려야 했다. 101호 방안에 앉아서 떔질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위 수술을 하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위 하나 수술하는데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하우." 대한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땜질이나 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지지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지지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고기 구워야 하니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고기가 이미 동날만큼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지지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지질 만큼 지져야 떔이 되지, 위키가 재촉한다고 붙어지나." 나도 기가 막혀서 "수술할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지진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고기 먹어야 한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하우, 난 안하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고기 먹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지져보시오." "글세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땜질하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이번에는 땜하던 인두를 숫제 인두걸이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웃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땜질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위키가 다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위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위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고기를 놓치고 라면을 먹어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고기굽는 드럼통을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데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위를 내놨더니 아내는 수술이 잘 됬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냉납을 하면 플레이좀 할만하다 싶음 죽어버리고, 재수없으면 위까지 날리며, 더 재수 없으면 벽돌되기 쉽상이다. 요렇게 수술이 잘 된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술은 혹 납땜이 떨어지면 납을 대고 인두로지지고 곧 호호불며 식히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수술은 대충 해놓고 한 번 떨어지면 소비자 잘못이라 되레 화내거나 '손님 맞을래요? 맞을래요?' 하면서 떄릴 기세다. 예전에는 수술을 하면서 확실한 남땜을 하기 위해 좋은 인두를 쓰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가며 제대로붙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엑박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한길전자 같은 곳에서 하면 보통 것은 얼마, 추가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모드전환 버튼을 첨가한 것은 세배 이상 비싸다. 모드전환 버튼이란 밴을 당할것을 염려 사용자 임의로 껐다 켰다 하는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모드전환 버튼인지 전원 버튼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정품도 아닌데 하다 불량 되면 모른다 하면 당최 에이에스도 받을수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위 수술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수술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의 피카소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나진상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땜질을 하다가 우연히 수동의 고기 드럼통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던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위스포츠를 하고 있었다. 전에 위 복싱을 하면서 현피 하던 생각이 난다. 위 수술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땜질하는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대놓고 땜질 하던것도 단속때문에 자리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주전 땜질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