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을 올리고 나서
오늘 커뮤니티에 글을 두 개 올렸습니다.
하나는 FreeCAD에 MCP를 붙여서 클로드로 기구 설계를 하는 바이브 모델링 얘기였고, 다른 하나는 AI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걸리는 "아직은 안 돼요"라는 말이 왜 불편한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올리고 나서 클로드한테 그 두 글을 주고 의견을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반론이 많이 들어오더군요. 그걸 받아서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처음 글보다 한 단계 정리가 된 거 같아서 여기 다시 적어봅니다.
AI 얘기를 AI랑 나눈 걸 정리하는 거라 좀 묘하긴 한데, 그게 또 이 글의 요점이기도 하네요..
'아직은 안 돼'는 누구의 한계인가
제가 올린 글의 명제는 "아직은 안 된다는 건 그걸 쓰는 사람의 한계인 경우가 많다"였습니다.
클로드는 절반만 맞다고 하더군요. 이유가 재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형상을 틀리게 만듭니다. 그걸 아시니까 cadxray를 만드신 거 아닌가요."
맞는 말입니다. 올 초에 MCP 붙여봤다가 공이나 박스 만드는 수준이라 포기했던 건 그 시점 기준으로는 정말 안 됐던 게 맞거든요. 그걸 되게 만든 건 모델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제가 확인하는 도구를 붙여서입니다. 이름부터 분석하고 확인하는 도구고요.
그러니까 제 경험이 증명하는 건 "AI가 이미 다 된다"가 아니라 "안 되는 부분은 도구를 붙여서 되게 만들 수 있다"에 가깝습니다. 이게 훨씬 반박하기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 저는 회로 30년 경험이 있으니까 AI 답을 보고 틀린 데를 짚고 방향을 틀 수 있는 겁니다. 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 안 돼"가 그 사람 기준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에요. 검증 못 하는 결과물은 못 쓰는 거니까요.
그래서 "사용자의 한계"라는 말은 맞는데, 그 한계가 노력 부족이 아니라 검증 능력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덜 공격적이기도 하고요.
전문가의 '안 돼'가 제일 아깝다
그런데 그 검증 능력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도메인 지식이 풍부한 경력자가 결과물 한 번 보고 "아직 안 돼"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제일 아까운 경우라고 봅니다.
틀린 데를 정확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이면 이미 피드백 한 턴 거리에 있는 거거든요. 그 한 턴을 안 하고 끝내는 겁니다. 초보자의 "안 돼"는 정보가 없어서 그런 거지만, 전문가의 "안 돼"는 정보를 가진 채로 버리는 거죠.
왜 그렇게 되는지는 이해가 됩니다. 판단력이 좋을수록 결과물의 흠이 바로 보이고, 흠이 보이면 "이건 못 쓴다"는 결론이 즉시 나옵니다. AI를 잘 다루게 해주는 그 능력이, 한 번 보고 접게 만드는 능력과 같은 능력이에요.
거기에 우리가 30년 써온 도구들이 전부 결정론적이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토크렌치는 되거나 안 되거나지 두 번째 시도에서 나아지지 않잖아요. 그 기준으로 AI를 보면 첫 결과가 곧 성능이 되는 겁니다. 신입 직원 첫 초안이 틀렸다고 해고하지는 않으면서 말이죠.
다만 그분들 편을 하나 들자면, "아직 안 돼"가 틀린 게 아니라 범위가 틀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방식으로 한 번 던져서는 안 된다"는 그 시점에 정확한 판단이었는데, 그게 "안 된다"로 일반화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분들께는 "AI가 되냐 안 되냐"로 싸우는 것보다 "어디가 틀렸는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게 낫다고 봅니다. 말할 수 있으면 한계에 닿은 게 아니라 첫 반복을 한 겁니다.
클로드가 한 말 중에 이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전문가가 "여기가 틀렸다"고 해주는 한 줄이 초보자 백 명의 "와, 잘하네"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자기가 정확히 못 가진 게 그거라고요.
그 판정은 항상 맞을까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봤습니다. 전문가의 "틀렸다"는 판정 자체가 항상 맞을까요.
저는 의심이 됩니다. 전문가의 판단은 자기가 걸어본 길 안에서는 정확한데, 그 바깥에서는 "내가 안 해본 방식이다"와 구분이 잘 안 되거든요. 30년 아날로그 회로라는 건 30년 동안 특정한 접근들로 문제를 풀어왔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 접근에 없는 토폴로지나 안 써본 부품이 나오면 첫 반응이 "이건 아니다"가 되기 쉽습니다.
제 부품 선택도 사실 제가 써본 부품 집합 위에서 생긴 직관입니다. AI는 데이터시트를 전부 비교해서 가져오니까 그 집합 밖에서 온 제안이 나오고, 그게 틀려 보이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여기서 클로드가 솔직한 얘기를 하더군요. 자기가 내놓는 것 중에는 정말 그 사람이 못 가진 관점도 있고 그럴듯하게 생긴 오류도 있는데, 겉보기로는 둘이 거의 똑같다고. 그리고 자기도 안에서 항상 구분하지는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전문가가 "틀렸다"고 바로 접는 것과 "새로운 관점이네"라고 바로 받는 것은 사실 같은 실수입니다. 둘 다 따져보는 단계를 건너뛴 거예요.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뿐인 거 같습니다. 이상해 보이면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묻는 거죠. 진짜 관점은 질문을 받으면 근거가 나오고 더 단단해집니다. 오류는 질문 한두 개면 무너져요.
"아직 안 돼"가 틀릴 수 있다는 의심은 맞는데, 그 결론이 "그러니 믿어보자"면 안 되고 "그러니 물어보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어보는 과정이 결국 제가 직원들한테 늘 얘기하는 "몇 시간 같이 의논하기"입니다.
AI가 AI를 만드는 시대, 사람에게 남는 것
요즘 흐름은 AI가 AI를 개발하는 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사람 쪽에서는 AI를 다루는 기법이 발전하는 거고요.
이것도 클로드는 반만 동의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AI가 AI를 개발한다"보다 "AI가 AI 개발을 가속한다"가 정확하다고요. 코드도 데이터도 평가도 AI가 하지만, 뭘 학습시킬지, 어떤 목표를 줄지, 내놓을지 말지는 아직 사람이 정한다는 겁니다. 고리가 닫힌 게 아니라 중간 구간이 자동화된 거죠.
그리고 사람 쪽의 "다루는 기법"은 유통기한이 짧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사람들이 손으로 짜던 것들, 단계별로 생각하게 하는 프롬프트나 검색해서 다시 묻는 루프 같은 게 올해는 모델 안에 들어가 있잖아요. 하네스니 루프니 하는 것도 비슷한 길을 갈 거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FreeCAD 26.3 얘기하면서 "파이썬으로 일일이 하던 걸 더 효율적으로"라고 쓴 게 딱 그 장면이네요. 기법이 흡수되는 거죠.
그러면 사람 쪽에 오래 남는 건 뭘까요. 두 가지인 거 같습니다.
하나는 뭘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 현장에서 1년 버티는 툴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는 AI가 바다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모릅니다.
다른 하나는 결과가 맞는지 판별하는 것. 앞에서 계속 얘기한 그 검증 능력이죠.
그래서 전문가가 "아직 안 돼"로 접는 건 툴 하나 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 30년을 처음으로 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리는 겁니다. 그 지식은 지금까지 본인 손의 처리량에 갇혀 있었잖아요. 하루에 회로 하나, 도면 하나. AI는 그걸 대체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곱셈을 해주는 물건인데 말이죠.
"아직"이라는 말도 문제입니다. 거기엔 "준비되면 다시 보겠다"가 들어 있는데, 준비됐다는 신호는 어디서도 안 옵니다. 써보는 것 말고는 아는 방법이 없어요.
교류는 어디에 쌓이는가
그래서 결론은 "아직 안 돼"로 버릴 게 아니라 계속 서로의 지식을 교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건데, 여기에 비대칭이 하나 있다고 클로드가 짚더군요.
대화 안에서는 교류가 맞는데, 끝나고 나면 쌓이는 쪽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클로드는 다음 대화에서 제가 가르쳐준 걸 동료처럼 들고 오지 못해요.
그래서 그 교류의 결과가 어딘가에 남으려면 사람 머릿속 아니면 사람이 만든 도구에 남아야 합니다. cadxray가 바로 그거네요. 모델링하면서 알게 된 "여기서 틀리더라"가 코드로 굳어진 겁니다. 회사 ERP도 마찬가지고요. 몇 시간씩 채팅하면서 정리된 제 머릿속이 시스템으로 남은 거죠.
"아직 안 돼"로 접는 사람이 잃는 건 결국 그 쌓임입니다. AI는 다음 버전에서 어차피 좋아지는데, 그 사람의 다루는 감각과 도구는 안 쌓이는 거예요. 나중에 돌아와도 그때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고요.
마무리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처음보다 한 단계 정리된 자리인 거 같네요.
처음 글의 명제가 "아직 안 돼는 사용자의 한계"였다면, 지금은 "아직 안 돼는 교류를 시작하기 전에 내린 판정"입니다. 같은 사람을 향한 말인데 하나는 등을 돌리게 하고 하나는 한 번 더 해보게 합니다.
하나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AI는 있는 판단을 증폭하지 없는 판단을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지금 경력자들은 수십 년 몸으로 해보면서 판단력이 생긴 건데, AI랑 몇 시간 의논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신입은 그 판단력이 어디서 생기는 걸까요. 전문가의 "아직 안 돼"는 그 사람 개인의 손해지만, 이쪽은 다음 세대 전문가가 안 만들어지는 문제라 부서를 맡은 입장에서는 더 큰 숙제입니다. 아직 답은 없네요.
지금은 먼저 쓰는 사람이 훨씬 큰 걸 얻어가는 시기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얻어가는 것의 대부분은 AI가 주는 게 아니라, 묻고 답하는 사이에 내 쪽에 쌓이는 겁니다.
'세상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상부 싱크대 장 줄이기. (1) | 2024.12.30 |
|---|---|
| 엑셀에서 병합된 셀에도 필터를 적용하는 방법(필터가 적용되는 병합셀) (2) | 2024.07.25 |
| chatGPT가 교회에 미칠 영향 - 2 (0) | 2024.07.22 |
| 유로트럭시뮬레이터2 (ETS2) 왕초보 벗어나기-돈벌기. (0) | 2020.06.15 |
| 유로트럭시뮬레이터2 (ETS2) 왕초보 벗어나기-G27 개조. (0) | 2020.06.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