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한 푼 남기지 않은 '진짜 부자' | ||||||||||||||||||||||||
한국기독교 120년 숨은 영성가를 찾아…유일한 선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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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엔 유한킴벌리와 한국얀센 등 작지만 큰 기업들의 모체가 된 붉은 벽돌의 옛 유한양행 사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일한이 그 곳을 내려다보며 깊은 묵상에 잠겨 있다가 영면에 든 언덕 위에 집터에 지금의 신사옥이 들어섰다. 빌딩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유일한의 흉상이 반긴다. 유한양행 사장을 지낸 연만희 고문(77세)은 1963년 이 회사에 입사해 총무부장 등으로 유일한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그는 69년 유일한이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외아들과 조카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했을 때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일한은 “내가 죽고 나면 그들로 인해 파벌이 조성되고, 그렇게 되면 공정하게 회사가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병든 동포를 구해야’ 유한양행 설립해 일궈…장관 자리도 거절 유일한은 매사에 공과 사가 분명했다. 외국을 오가는 비행기 표는 물론 모든 비용을 자신의 주식배당금에서 공제하도록 했고, 공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사원들을 ‘주인’으로 우대했다. 1930년대부터 부천 소사 공장 부지에 종업원들을 위한 독신자 기숙사·집회소·운동장·양어장·수영장들을 만들고, 주식을 공개하고 사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인간으로서 애착을 떨어뜨리기 어려운 돈과 가족에게도 초탈한 유일한의 삶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아버지 유기연으로부터 시작됐다. 불과 아홉 살의 유일한을 미국에 보내려하자 몸져누워 항의하던 아내에게 “자식들이 우리 것 같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고 설득한 아버지였다.
나라를 잃은 뒤 평양에서 북간도로 건너가 이국을 떠도는 가족들과 동포들의 아픔으로 밥을 삼고, 자신의 땀으로 국을 삼은 유일한은 대학을 졸업한 뒤 그 고생을 밑천으로 통조림 회사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고국행을 결행해 1925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는 병든 동포들을 구해야한다며 의약품업을 했고, 벌어들인 돈은 교육과 공익사업에 투자했다. 해방 뒤 유일한은 이승만의 상공부 장관 입각 요청도 거부하고, 정치자금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기업에선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액을 매번 세금으로 내자 당국에선 의약품을 함량을 속이는 게 틀림없다고 보고 조사를 했으나 함량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뒤 모르핀을 수입해 팔면 큰 이익을 남긴다고 보고하는 간부사원에게 “당장 회사를 나가라”고 호통을 친 일화는 유명하다. 연만희는 늘 언덕 위의 자신의 집에서 물끄러미 회사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유일한에게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유일한의 중국인 의사 아내 호미리는 미국으로 돌아가 자녀들과 살았기에 그는 반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유일한은 “이 시간이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며 “자네도 꼭 자신을 돌아보고 숙고할 시간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유일한에겐 그 때가 기도 시간이었다. “삶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고, 오늘날 저희들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을 충분히 즐기며, 명랑하고 참을성 있고, 친절하고 우애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늘 이런 기도문을 외던 멋쟁이 유일한이 눈을 감은 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손녀 유일링에겐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 1만 달러를 주고, 딸 재라에겐 유한중·고 안의 땅 5000평을 주면서 학생들이 뛰노는 유한동산을 꾸미라고 했다. 그리고 외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보냈으니 스스로 힘으로 살라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거대 재산은 모두 교육과 사회사업에 기증했다. 1991년 타계한 딸 유재라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비롯하여 전 재산 205억 원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빈 몸, 빈 마음으로 떠났다. 조연현 /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이 기사는 <한겨레> 신문 종교면 기획물입니다. 조연현 기자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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