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인테리어의 작은 소품들은 그동안 집에 보관 중이시던거 가져오셨더군요.
일부러 맞춘듯이 잘 어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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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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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위의 시계랑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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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소품으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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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 있는 찬기들 -인테리어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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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배경으로 쓸려고 찍어본 찬기 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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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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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바닥 인테리어 - 유리로 마감처리를 하셨네요.
깨질까 불안하지만 튼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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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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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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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메뉴는 아니고 샘플로 만드신것 시식했습니다.

맛난 전병에 춘장을 바르고, 그위에 야채로 쌈을 싸먹는 방식.

전병은 부드럽고 터지지도 않는 정말 맘에 드는 맛이구요,

춘장은 날 춘장인데, 이런 소스가 야채랑 잘 어울리는군요.

야채는 방금 내온 신선한 거라서 입에서 톡톡 씹히는 시원한 맛이 좋구요.

두개면 한끼 식사일듯.

요렇게 세팅해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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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종지는 춘장입니다.-용기가 더 이뻐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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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도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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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재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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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 중요하고도 인상깊게 맞나던 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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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에 춘장 바르고 야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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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둘둘 말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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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고 있는 소설이다.
우연히 라디오에 흘러 나오는 소개를 듣고 있다가 필 받아서 담날 검색해서 구매.
좀 시간이 지난 소설인데, 아마 저작권이 딴 곳으로 넘어가면서 재발매된것 같다.
소설의 양이 상당해서 기존에는 상/하 두권으로 나온건데, 이번 출판사에서는 단행본으로 출시했다.
덕분에 페이지가 장장 640페이지~~~


덴마아크 작가 '페터 회'의 1992년 작 추리소설이며,
1993년 뉴욕타임즈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30개국이 넘는 곳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어
각 국에서 호평받으며, 많은 상들을 휩쓸었고, 1997년에 'Smilla's Sense of Snow' 라는 제목으로
빙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 물론 영화를 본건 아니다~~~-

처음엔 양에 질려버려 힘들고, 너무나 이국적인 상황들  - 덴마아크, 그린란드등의 지역적인 이질감-,
이름, 명사 들에서 오는 언어의 이질감, 처음엔 추리소설인지, 일반 소설인지 모를 장르의 이질감에
정신을 못차리지만, 어느정도 진도를 나가면서 스밀라 라는 주인공과 내용에 완전 필이 꽂혀버렸다.

그린란드라는 전혀 생소한 극지대와 그 극지대를 소유한 덴마크라는 나라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린란드인 원주민 어머니와 덴마크인 부유한 의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다양한 부류의 인간군상의 집합.

추리소설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포맷.

다읽으면 다시 한번 정리해 봐야지.

일시 : 5월 27일 주일 오후 3시~~

장소 : 강동구 길동 은평교회 본당

음원 : 은평교회 2부 성가대.

믹서 : GL4000 프리 사용 - 다이렉트 아웃으로 6채널 사용

인터페이스 : firestudio by presonus

마이크 : 성가대 마이크 4개 - C3000

   피아노 : 슈어 PZM 마이크 (모델명은 잘~~)

   전자오르간 : 라인 아웃 

   MXL603-2개 : 앰비언스 2채널.


대충 이상과 같은 구성으로 했구요.

기존에 설치된 성가대 마이크 네개의 믹서 다이렉트 아웃, 피아노, 전자오르간 아웃을 인터페이스의 라인 인풋 6개로 받고,

중층 에 앰비언스로 xy 설치해서 인터페이스의 프리로 직접 받았습니다.


설치, 녹음 혼자 다 하느라 죽는 줄 알았구요, 문제는 세팅만 하고 내려가서 성가대 서는 바람에 세팅이후의 실제 녹음은

손 볼 일도 없었습니다~~~ㅋㅋㅋㅋ


다이렉트 아웃을 프리로 받았지만, 게인은 손댈수밖에서 없어서 미리 사진으로 찍어두고 녹음후에 다시 원상 복구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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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신 성가대원분들이십니다. 60분이 채 안되시는군요. 주일 성가대는 보통 90분정도 서십니다.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단 아래 두줄을 비우고 위로 올라갔어야 직접 마이크에 흡음이 더 잘되었을것 같고, 앰비언스도 잘 나왔을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왼쪽에 앨토, 오른쪽에 소프리, 가운데 위가 배이스, 가운데 아래가 테너입니다.

설치된 마이크의 앞쪽으로 각 파트를 나눌까도 생각했는데, 그럼 발란싱에 자신이 없고, 자리 정리할 정신도 없어서 포기.

저 마이크들은 각도도 다 제멋대로 입니다.ㅠ.ㅠ. 갈수록 틀어지는데 아무도 손을 안봐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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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언스 마이크 설치

앰비언스 들어보면서 위치도 조절하고, 더 아래로도 움직여보고 조절을 해야하는데 설치에 급급했네요.

그래도 녹음된거 들어보니 앰비언스 설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녀석은 이번에 물건너온 MXL603 두자루 긴급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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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믹서쪽 사진

컴퓨터, 믹서는 본당 장비 사용했습니다.

제놋북이 비스타인데, 저 장비 드라이버가 안나와서 어차피 못쓰는관계로 본당 장비 이용했습니다.

1,2번 채널은 앰비언스 콘덴서 마이크 직결,

3~6번은 성가대 직접 마이크 다이렉트

7는 전자오르간 라인 입력 다이렉트

8은 피아노 pzm 마이크 입력 다이렉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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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업을 해본다는게 참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매주 자리 채우고, 연습해서 성가대 서는 걸로 끝나지 않고,
뭔가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이나 회중의 눈길도 느낄 필요 없고, 음악 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걸 느낄수 있었고,
책장 넘기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참여하시는 분들의 보통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들을 함으로써 다른 부서에도 여러가지 면으로 많은 자극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성가대나 방송실등에서도...

저 개인적으로는 현장 작업이 적어서 실무에 대한 감이 없는데, 이런 녹음작업들을 진행해봄으로써
더 많은 경험들을 쌓아갈 수 있어서, 다른 교회들에도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지식을
쌓아갈 수 있어서 좋고..

이렇게 다른 분들이 참조할만한 자료로 남길 수 있어서 더욱 좋고~~~
아래 카페에 있는 음향, 영상 설치기입니다.
기본 컨셉은 나이 드신 분이 운영하시는거니
1.최대한 간단하게, 어렵지 않게..
2.다양한 장비를 다루지 않도록 소스는 PC를 활용.
3.간단한 스피치나 MR을 이용한 노래 정도 할 수 있도록..

소스는
1.배경음악 : PC의 오디오 출력 사용
2.동영상 재생 :DVD,디빅 및 웹 동영상 재생도 PC 사용
3.스카이 위성 방송 송출
4.무선마이크
5.공연용 MR 재생 : PC 이용

대략 이런 컨셉으로 결정.
아무래도 사람 욕심이라는게 주변에서 많이 봐온건 자꾸 하고 싶어지는 법이라,
복잡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그래도 해달라고 말씀하시는건 최대한 다 해드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구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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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의 세팅은 배선 및 세팅, 연결들은 제가 직접 하고,
스피커 설치 및 배선용 CD관 매립은 인테리어 쪽에서 했습니다.

실제 장비 사진들.

1. 모니터랑 컴퓨터.
모니터와 프로젝터는 온보드 그래픽 카드의 듀얼 채널을 이용해서 바탕화면 확장으로 세팅.
그래서 프로젝터로 동영상을 보거나 사진 디스플레이를 하더라도 LCD에서는 맘대로 다른 작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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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컴퓨터와 그 아래 리시버 - 나중에 리시버 위에 위성셋탑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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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디오믹서, 무선마이크, 키보드, 마우스
요건 위에 키보드 레일을 한칸 더 달아서 사용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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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크린.
요건 별도의 스크린을 구매하지 않고, 인테리어 하시는 집사님이 페인트로 작업하셨습니다.
특별히 후작업을 해서(후끼?) 스크린 효과를 나게 하셨네요. 화질은 괜찮았다는 생각이~~
덕분에 주변 테두리도 임의로 인테리어 까지..
아쉬운건 전체 공간에서 가운데에 스크린이 위치한게 아니라 저 벽면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바람에
프론트 스피커의 중간에 스크린이 있는것이 아니라 동영상 재생시에 왼쪽 스피커가 좀 크게 들리네요.
이 화면은 사진 파일을 올려서 좀 어두워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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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윈도우 바탕 화면을 완전 사이드에서 찍은 건데 아주 선명하게 잘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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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로젝터 : 프리미어 x713이라는 모델.
무려 3500안시. 물론 믿기는 어렵겠지만, 밝기는 무척 밝구요.
아쉬운건 촛점이 너무 길어서 저 사이즈에서 한 5,6미터 이상 뒤로 빼야 가능.
요즘 가정용으로 단촛점 많은데 비하면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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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모니터랑 프로젝터
이런식으로 완전히 별도의 작업이 가능하도록 바탕화면 확장으로 세팅.
물론 처음 다루시는 분들은 힘들지만, 원리를 좀만 이해하시면 잘 사용하실수 있을듯.
지금은 이걸로 문제는 없으시네요.
지금 프로젝터로는 카페 사진 모음을 슬라이드 쇼 하는 중이고,
LCD에서는 음악 파일을 BGM으로 재생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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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내역.
1.프로젝터 : 프리미어 x713
2.리시버 : 온쿄 sr504
3.믹서 : 베링거 802
4.무선마이크: 젠하이져 프리포트 핸디형
5.스피커 : akata 8인치
6.모니터 : 파인포스 22인치 무결점 와이드
7.컴퓨터 : amd 브리즈번 3600+/유니텍 메두사/디지웍스 1G/폭스콘 슬림 케이스

예산은 재료비만 350정도 들었습니다.
아들에게 한 푼 남기지 않은 '진짜 부자'
한국기독교 120년 숨은 영성가를 찾아…유일한 선생
입력 : 2007년 04월 13일 (금) 11:44:39 / 최종편집 : 2007년 04월 13일 (금) 13:00:15 [조회수 : 1409] 조연현

   
 
  ▲ 유일한 선생.  
 
천문학적인 돈을 기부한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선행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부자가 된 뒤 부를 사회에 내놓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돈을 만지면서도 애초부터 그 돈이 ‘내 것이 아니다’고 못 박았던 사람이 있었다. 부도 직위도 자신이 잠시 맡고 있다고 여기며 조금도 집착하지 않았던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선생(1894~1971년)이었다.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엔 유한킴벌리와 한국얀센 등 작지만 큰 기업들의 모체가 된 붉은 벽돌의 옛 유한양행 사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일한이 그 곳을 내려다보며 깊은 묵상에 잠겨 있다가 영면에 든 언덕 위에 집터에 지금의 신사옥이 들어섰다.

빌딩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유일한의 흉상이 반긴다. 유한양행 사장을 지낸 연만희 고문(77세)은 1963년 이 회사에 입사해 총무부장 등으로 유일한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그는 69년 유일한이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외아들과 조카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했을 때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일한은 “내가 죽고 나면 그들로 인해 파벌이 조성되고, 그렇게 되면 공정하게 회사가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병든 동포를 구해야’ 유한양행 설립해 일궈…장관 자리도 거절

유일한은 매사에 공과 사가 분명했다. 외국을 오가는 비행기 표는 물론 모든 비용을 자신의 주식배당금에서 공제하도록 했고, 공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사원들을 ‘주인’으로 우대했다. 1930년대부터 부천 소사 공장 부지에 종업원들을 위한 독신자 기숙사·집회소·운동장·양어장·수영장들을 만들고, 주식을 공개하고 사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인간으로서 애착을 떨어뜨리기 어려운 돈과 가족에게도 초탈한 유일한의 삶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아버지 유기연으로부터 시작됐다. 불과 아홉 살의 유일한을 미국에 보내려하자 몸져누워 항의하던 아내에게 “자식들이 우리 것 같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고 설득한 아버지였다.  

   
 
  ▲ 연만희 고문이 유일한이 살던 동산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기도 삼아 스스로의 양심을 깨웠던 유일한을 회고하고 있다. (사진제공 조연현)  
 
소년 유일한은 “미국의 문물을 배워 조국 동포를 구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 하고 21년 뒤에야 만나볼 어머니의 품을 떠나 그렇게 미국행 배에 올랐다. 아버지가 안겨준 돈을 몽땅 도둑맞은 채 미국 땅에 내린 유일한은 천행으로 독실한 기독교인 두 자매와 함께 살면서 신문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다. 학비와 점심 값을 마련하기에도 역부족임에도 그는 독립투사들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헤이팅스소년병학교에 1909년부터 3년간 매년 여름방학 동안 훈련에 참여해 수료하기도 했다.

나라를 잃은 뒤 평양에서 북간도로 건너가 이국을 떠도는 가족들과 동포들의 아픔으로 밥을 삼고, 자신의 땀으로 국을 삼은 유일한은 대학을 졸업한 뒤 그 고생을 밑천으로 통조림 회사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고국행을 결행해 1925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는 병든 동포들을 구해야한다며 의약품업을 했고, 벌어들인 돈은 교육과 공익사업에 투자했다. 해방 뒤 유일한은 이승만의 상공부 장관 입각 요청도 거부하고, 정치자금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기업에선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액을 매번 세금으로 내자 당국에선 의약품을 함량을 속이는 게 틀림없다고 보고 조사를 했으나 함량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뒤 모르핀을 수입해 팔면 큰 이익을 남긴다고 보고하는 간부사원에게 “당장 회사를 나가라”고 호통을 친 일화는 유명하다.

연만희는 늘 언덕 위의 자신의 집에서 물끄러미 회사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유일한에게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유일한의 중국인 의사 아내 호미리는 미국으로 돌아가 자녀들과 살았기에 그는 반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유일한은 “이 시간이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며 “자네도 꼭 자신을 돌아보고 숙고할 시간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유일한에겐 그 때가 기도 시간이었다.

“삶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고, 오늘날 저희들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을 충분히 즐기며, 명랑하고 참을성 있고, 친절하고 우애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늘 이런 기도문을 외던 멋쟁이 유일한이 눈을 감은 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손녀 유일링에겐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 1만 달러를 주고, 딸 재라에겐 유한중·고 안의 땅 5000평을 주면서 학생들이 뛰노는 유한동산을 꾸미라고 했다. 그리고 외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보냈으니 스스로 힘으로 살라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거대 재산은 모두 교육과 사회사업에 기증했다. 1991년 타계한 딸 유재라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비롯하여 전 재산 205억 원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빈 몸, 빈 마음으로 떠났다.

조연현 /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이 기사는 <한겨레> 신문  종교면 기획물입니다. 조연현 기자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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