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을 하다보면 납땜을 해야할 일이 다반사로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업무상 납땜을 하다보니 납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할 수 있겠되었네요. 회사에서 케이블을 납땜할 일은 없지만, 어차피 땜질하는거는 비슷하기 땜에~~~

* 준비물
1. 인두기 : 25w 정도의 용량으로 구하면 되고, 어차피 한번 사면 계속 쓰는거니 좋은 걸 사는게 좋겠습니다. 내구성 좋은 걸 사시면 발열을 해주는 세라믹 히터가 고장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오랫동안 두고 쓰실수 있습니다. 보통 인두기 제품 하면 HAKKO라는 일본 회사 제품을 많이 알아 줍니다.
스틱형이든, 탁상형이든 많이 쓰고, 또 제품도 좋습니다. 가격은 꽤 나가는 제품이죠.
국산이라면 아마 같은 타입일때 절반이하로 구매가능할것으로 생각합니다.
몇천원짜리 너무 싼 인두는 몇번사용하는걸로는 모르겠지만, 납땜 결과나 작업 시간 등등을 보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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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팁을 잘 선택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가격이 나가도 칼팁으로 구매하시면 같은 용량대비
발열부위가 넓기 때문에 납땜 하기가 아주 수월해집니다.
또한, 아주 작고 미세한 부위도 끝의 뾰쪽한 부분으로 땜이 가능해서 대용량 작업에서 미세 작업까지 커버가 가능한 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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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납 : 납이라고 해서 순전히 납만 들어있는것은 아니고, 납과 주석의 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PbFree 라고 해서 납이 유해성분이라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 때문에 무연납이라는 제품들도 나옵니다만, 납땜의 특성 자체만으로는 일반납이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좋습니다.

참고로, 은납이라고 하는 것도 음향쪽에서 많이 쓰는데, 이는 납대신에 은+주석 합금 제품입니다.
녹는 점이 높아서 인두기 용량이 좀 큰게 필요하고, 납땜 성질은 약간 떨어집니다만, 납의 산화같은 성질이 없어서 내구성이나 신호전달에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또한 PbFree이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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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에는 단지 순수한 금속 물질뿐 아니고, 납땜을 잘되게 해주는 플럭스라는 용제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인두기로 납을 녹이면 폐유 같은 용제가 녹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플럭스의 종류나 함유량에 따라서 납에 따른 납땜 특성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납에도 메이커가 있어서 캐스터 회사 제품을 알아 줍니다. - 뭐 다른 메이커도 있습니다만..
가격은 국산 대비 두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국산도  괜찮구요, 단 조심해야할건 너무 싸구려 제품을 쓰면 플럭스때문에 지저분해지고, 납땜도 잘 안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3. 칼 : 문구용 커터 칼 하나 있으면 되겠죠?
주변에 커터 보면, 이게 칼날을 조각내서 버리면서 쓰게 되어 있는데, 이걸 잘라내면서 쓰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저는 작업 전에 아예 한토막 잘라내고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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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니퍼 : 케이블 작업에 필수 아이템중에 하나겠죠.
니퍼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아주 얇은 선을 자르는데 쓰는 니퍼를 가지고 굵은 케이블들 마구 자르면 얼마 쓰지 못하고 버려야겠죠. 굵은 케이블 자르는 니퍼로는 얇은 케이블 작업을 정밀하게 하기에 부족하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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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트리퍼 : 저는 개인적으로 니퍼보다 스트리퍼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스트리퍼는 케이블의 게이지(두께)별로 피복 벗기는 작업을 쉽게 해주는 공구입니다.
보통 니퍼로 피복 벗기는 작업을 하면 깨끗하게 벗기거나, 아주 짧은 피복 벗기기는 어려운데 비해 스트리퍼를 사용하며 절단 피복도 깔끔하고, 짧은 피복을 벗기기에도 아주 쉽게 가능합니다.
스트리퍼를 고르실 때는 작업에 주로 쓰이는 피복 두께를 확인하셔서 주로 쓰이는 두께가 들어있는 제품을 고르시면 됩니다. 아주 굵은 것은 스트리퍼 작업보다 칼로 작업하는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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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 있으면 좋은 것들

1) T/C : 납땜을 하면 그곳에 납안에 있던 플럭스들이 나와서 지저분하게 되고 나중에 산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척을 하면 납땜한 곳을 아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통이 있기도 하고, 치솔에 붙혀서 닦으면 작업한 티도 안나게 깔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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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스트 : 인두팁에 뭍혀서 납땜을 하면 납끼리 잘 붙어서 작업이 잘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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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플러스 : 납땜할 곳에 플럭스를 발라주면 페이스트처럼 작업이 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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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두스탠드/납걸이 : 안전하고 편리하게 작업하게 해줍니다.
특히 스탠드에 있는 인두팁 닦는 스폰지가 있으면 아주 좋고, 없으면 화장지에 물 뭍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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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거는 양x국 형제님이 렌탈비로 주신 모가미 8채널 멀티케이블입니다.
  유연성이 아주 좋고, 두께도 얇고.. 역시 비싼값은 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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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업에 필요한 길이만큼 배를 갈라야겠죠?
멀티케이블의 외피가 두껍기는 하지만 깊이 갈랐다가는 내선들의 피복이 벗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에 칼로 완전히 가르지 말고, 안이 안보일정도로 가른 다음에 입구부터 손으로 벗기면 칼질 한 곳으로 잘 갈라지게 됩니다.
배를 가르면 요 제품처럼 종이랑 실로 처리되어 있는데, 종이는 적당히 잘라 주시고, 안에 실도 잘라 버리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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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렇게 마감처리를 하면 아래 그림처럼 작업할 케이블들이 보이는군요.
이때 스트리퍼를 이용해서 깔끔하게 작업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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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쉴드를 묶어서 감아주고, 시그널 라인 두라인도 스트리퍼로 피복을 벗기고 말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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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제 납땜할 수 있도록 재단을 해봅니다.
개인적으로 납땜의 가장 중요한 작업중에 하나는 재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잘 재단을 해야 납땜 작업을 할때 깔끔하게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미리 길이 조절을 잘 해서 납땜 할때 길이가 맞지 않아서 납땜하다가 다시 길이 조절을 하고 다시 땜하고 하면 바로 엉망이 됩니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미리 완벽하게 재단하고 땜은 한번에 끝내는 것이 납땜의 가장 중요한 요령입니다.

납땜을 하고자하는 곳의 양쪽에 미리 납을 먹여 놓는 것도 중요한 사전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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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다음에 납을 먹인 케이블의 남은 부분을 니퍼로 잘라주면 사전 작업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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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자 쪽에도 미리 납을 먹여 놓습니다.
   이제서야 납땜할 준비가 끝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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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원래 단자를 잡아주는 기구도 있는데 저는 그냥 손으로 작업하는게 빠르고 정확해서~~
단자를 중지와 약지로 잡고, 엄지와 집게로 케이블을 잡고 빠르게 한번에 붙입니다.
양쪽에 납이 뭍어있으니, 양쪽 납만 녹이면 바로 착 달라붙습니다.몇초면 단자 납땜 완료.
오히려 그 이상 인두로 지지고 있으면 실패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면 잘 안되는거 계속 지지고 있지말고 그냥 다시 첨부터 양쪽에 납 먹이고 납땜을 다시 시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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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제 이렇게 납땜이 완료 되었군요.
여기에도 나름 비기(?)가 있습니다. 보통 케이블의 경우에 가장 많은 힘을 받을 수 있는 라인은 쉴드입니다. 따라서 케이블을 잡아 당겼을 때, 쉴드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짧게 납땜을 했습니다.
신호 라인은 좀 여유를 두고 쉴드는 짧게 하는 겁니다.

아.. 여기서 주의점!!!
단자의 꼭지를 미리 집어 넣어 두시는 거 잊어버리면 납땜 다시 떼야 합니다!!!!
열개 하면 한개는 꼭 그런다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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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제 뚜껑을 씌울 차례.
아주 싸구려 아니라면 반드시 딱 맞는 홈이 있습니다. 특히 55단자는 이 홈을 맞추지 못하면 단자 부위가 그냥 돌아버리는 경우가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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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작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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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멀티 케이블의 경우는 외피를 가른 부분을 마감 처리 하지 않으면 사용할수록 갈라지겠죠.
그래서 케이블 타이로 한번 묶어서 갈라지지 않도록 마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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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anna 의 아카펠라 버젼.


이번 아프간에서의 납치 사건으로 곱지않은 개신교를 향한 시선에 뭐라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알고보면 선교라는 것이 교회라는 물리적인 공간내에서만의 개념이었고,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었기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중 뉴스앤조이에 올라온 현지 선교사님의 이메일 기사는 내가 밝은 빛을 주었다.

궁극적으로 한국교회, 선교의 잘못된 방향에 대한 하나님의 질타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희생으로 23인의 목숨을 가져가신다면 너무나 큰 죄값을 치루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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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그 기사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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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23명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가운데, 한국교회의 선교 방식에 대한 비난 여론 또한 인터넷에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앤조이>에서는 아프간 피랍 사태를 통해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봉사와 선교 방식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긴급 구호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가 이메일로 <뉴스앤조이>에 보낸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07년 7월 20일 아침 6시,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몸살과 오한으로 밤새 잠을 설치다 어렴풋이 든 잠이어서 금방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끊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사관 강 모 영사의 전화였다. 이른 아침에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라, 심상치 않은 듯하여 곧 전화를 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른 아침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한국인들이 피랍되었다는 정보가 있어서 확인 차 전화 드렸습니다. 단기 방문객들 가운데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곧 전 지역에 확인해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강 영사와 통화를 마치자 혹 싶어서 칸다하르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부장이 이날따라 잠에 덜 깨신 듯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문의를 드렸는데, 혹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 한 팀이 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분당샘물교회 단기팀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결이 된다 해도 그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후폭풍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복잡한 문제다.

아프간이 가장 큰 피해자…한국선교 위기관리 능력 떨어져

이번 일로 우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아프간스탄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결과가 나오든 결국 그 내용은 부메랑이 되어 아프가니스탄에 피해를 입힐 것이다. 아프간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량 국가라고 전 세계가 한번 더 확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선교의 위기라는 것이다. 고 김선일 선교사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교회의 위기관리 능력은 제로 수준에 가깝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능력이 아직은 미숙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힐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논리만 붙잡고 무분별하게 뛰어들 세력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건이기에 어디서부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인간적인 솔직한 심정은 당장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 살게 되더라도 더 이상 아무 방문객도 올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국이 금지된 상태에서 언론사들은 연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해온다. 기독교방송사들도 “선교사님, 선교사님” 하면서 연일 현지상황에 한마디라도 듣고자 목을 맨다. 내가 선교사인지 특파원인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기회에 생방송 9뉴스에 이름 석 자라도 올리고 싶은 숨은 공명심 때문일까? 기자도 아니면서 괜히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개인 평까지 섞어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장단을 맞추어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무분별한 한국선교 전략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의 희생양인가? 작년에 연이은 비기독교인들의 엄청난 비난을 단지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이들의 편견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선교의 길은 계속 가야 한다는 헌신만을 다짐하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가 단순논리로 해석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단기팀들이 이곳을 지나갔다. 이번 팀보다 더 많은 인원의 단기팀들도 수없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번 팀이 현지 문화에 돌출되는 행동으로 주목받을 짓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현지 사정에 밝은 3명의 한국인 선교사의 인솔 하에 이동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카불-칸다하르 길은 아침에 출발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여러 단기팀 중에 유독 이 팀이 희생양이 되어 시대의 집중을 받고 있는 것은 이 팀이 지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주님은 그런 아픔을 이 팀에게 허락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인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문제였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샘물팀이라 한다면, 이곳의 선교사들은 그동안 안전 불감증 속에 단기팀들을 맞이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팀만을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앞으로 이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누군가는 같이 져주어야 하고 그 누군가에 한국교회 전체가 동참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그런 준비가 안 된 듯하여 더 걱정이 앞선다. 

둘째 녀석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늦은 시간이지만 한국인 인질들의 협상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찹찹한 심정으로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는 사무실로 다시 가서 계속 생각했다.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집에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하는데 믿음이 자꾸 없어진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는 나의 미천한 영성이 안타깝다. 

같은 시간 서구 선교사들은 동방에서 온 믿음의 동료들을 위해 특별 저녁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특별한 관계도 없는 23명의 영혼들을 위해 사건 직후부터 24시간 기도 체인을 만들어 자원하며 기도해주는 그분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늦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골방에서 기도의 합주를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큰소리 내어 섬긴다

과연 한국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책임감을 가지고 선교지를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한국교회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성숙함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고 있을까? 그런 책임감과 성숙함보다는 열심과 비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았는가? 

120여 년 전 꽁꽁 마음 문이 닫혔던 조선 민족을 섬기기 위해 청춘의 몸으로 왔던 벽안의 선교사들. 때로는 배우자를 잃고, 자식을 잃고, 부모를 조선 땅에 묻으면서도 그저 말없이 수고하고 눈물 훔치던 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앞 다투어 자랑하는 제2의 선교 파송대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빛도 소리도 없이 섬긴 방면에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소리를 내어 섬기고 있다. 자신의 비전과 욕망조차도 주님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쓴다.

작년 이맘 즈음 2000명의 인원으로 평화 행진을 하려고 했던 분들에게 묻고 싶다. “안전 문제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음을 장담하셨는데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일까?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남아있기에 미안함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행사에 반대하던 아프간 선교사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했던 단체 대표께서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선교사들이, 그 단기팀 운영의 전략적인 선교사들이 인솔을 하다가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양식이 남아있다면 선교계에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라고… .

그럴 용기가 없다면 타선교 단체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인들이 오늘 석방된다고 하는데 알고 계세요?”라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언만큼은 안 해주셨으면 한다. 

지금은 떠나있지만 10년을 넘게 몸담았던 단체이기에, 이생을 다할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마음 한편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어있기에 호소한다. 그리고 조국 교회여, 조용히 아버지 앞에 침묵함으로 나아가자. 입을 벌려 악을 쓰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보자.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그것을 붙잡고 애통해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자. 우리의 속사람을, 한국교회의 내부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가득 채우자. 그것이 지금 당장 모든 기독교인들이 취해 야 할 최우선적이며 최종적인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협상 시간이 하루 더 연장이 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하루 더 공포 속에서 지낼 팀들이 생각난다. 잘 알고 지내던 자매의 얼굴이 스쳐간다.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따랐던 자매다.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성장기를 겪으며 자라왔기에 지금의 고난도 잘 참으리라 애써 위안해본다. 어쩌면 협상이 며칠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딸이 내 앞에서 자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아!

너 희들을 데리고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매서운 겨울강 바람을 건너 오직 믿음으로 아프간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곳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너희가 했던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아빠, 우리 정말 떠나야 해요?” 아직은 무엇이라 분명히 말하기 힘들고 그러나 곧 분명히 말할 시간이 오겠지만 아빠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시로 답을 대신한다.

언더우드의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의 일부 중에서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프런티어의 긴장이 진하게 감도는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써 3주 전이다. 내가 위 산 지 얼마 안돼서 수동에 갔을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 언덕위 하얀집으로 가기 위해 일단 자가용에서 내려야 했다. 101호 방안에 앉아서 떔질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위 수술을 하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위 하나 수술하는데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하우." 대한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땜질이나 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지지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지지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고기 구워야 하니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고기가 이미 동날만큼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지지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지질 만큼 지져야 떔이 되지, 위키가 재촉한다고 붙어지나." 나도 기가 막혀서 "수술할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지진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고기 먹어야 한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하우, 난 안하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고기 먹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지져보시오." "글세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땜질하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이번에는 땜하던 인두를 숫제 인두걸이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웃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땜질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위키가 다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위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위다.


EXIF : KONICA MINOLTA | DYNAX 5D | 1/20s | F 4 | ISO-800


고기를 놓치고 라면을 먹어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고기굽는 드럼통을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데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위를 내놨더니 아내는 수술이 잘 됬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냉납을 하면 플레이좀 할만하다 싶음 죽어버리고, 재수없으면 위까지 날리며, 더 재수 없으면 벽돌되기 쉽상이다. 요렇게 수술이 잘 된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술은 혹 납땜이 떨어지면 납을 대고 인두로지지고 곧 호호불며 식히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수술은 대충 해놓고 한 번 떨어지면 소비자 잘못이라 되레 화내거나 '손님 맞을래요? 맞을래요?' 하면서 떄릴 기세다. 예전에는 수술을 하면서 확실한 남땜을 하기 위해 좋은 인두를 쓰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가며 제대로붙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엑박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한길전자 같은 곳에서 하면 보통 것은 얼마, 추가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모드전환 버튼을 첨가한 것은 세배 이상 비싸다. 모드전환 버튼이란 밴을 당할것을 염려 사용자 임의로 껐다 켰다 하는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모드전환 버튼인지 전원 버튼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정품도 아닌데 하다 불량 되면 모른다 하면 당최 에이에스도 받을수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위 수술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수술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의 피카소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나진상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땜질을 하다가 우연히 수동의 고기 드럼통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던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위스포츠를 하고 있었다. 전에 위 복싱을 하면서 현피 하던 생각이 난다. 위 수술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땜질하는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대놓고 땜질 하던것도 단속때문에 자리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주전 땜질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타와 삼부, 곰보수레와 바트델거



그들은 신도림역 근처 신축 공사현장에서 11명의 목숨을 구하고 사라졌던
몽골인 불법체류자!!! 4인의 이름입니다.
도망가던 계단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에 뒤돌아 내려가 온몸에 땀이 젖도록 유해연기속을
뛰어다니며 구해내던 그 상황이 그대로 상상이 되는군요.
우리는 그들을 불법체류자로, 못사는 나라에서 돈벌러 온 허접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그 순간에, 그들은 자신들과, 우리와 동일한 생명으로 사람을 보고
생명을 던져 그 연기속으로 들어갔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명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그 고귀한 존재에 대해
나는 혹시 등급을 메기고 있던건 아닌지...
그건 꼭 외국인노동자 뿐 아니라,
내 아들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
친척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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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지식채널e "바타와 삼부, 곰보수레와 바트델거"

  1. 서론

    나는 평준화 정책은 반드시 계속 되어져야 할 교육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국가로의 발전 이전의 뿌리 깊은 출세를 위한 교육의 도구화, 현대사회로 들어선 이후로도 변함없이 지속된 교육, 시험을 통한 신분 상승과 권력, 부로의 접근 도루로써의 가치가 교육의 현실적인 역할이라고 볼 때, 이의 균등한 기회 제공은 마땅히 있어야 할 한국 사회의 필수 요소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평준화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사회의 변화, 교육체계의 변화 등을 이겨내지 못하는 지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형식만 남아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도 있다. 교육을 위해 평준화가 존재하는가, 평준화를 위한 교육이 존재하는가 역시 돌아보아야 할 점이다. 이에 본질적인 면에서 평준화 정책을 다시 한번 돌아 보고, 어떠한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펼쳐갈 것인가를 살펴 보는 것은 두 아이의 엄마로써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2. 고교 평준화의 역사와 현황

    고교 평준화의 역사를 살펴 보기 위해서는 그 당시 시대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미 해방 이후 소위 명문 중학교의 진학이 고등학교 진학을 보장하고, 대학진학으로의 통로가 되고 있었고, 이는 당시 서울과 부산의 중학생 중 1만5천여명이 지방에서 전입한 학생이라는 통계가 있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중학생 과외뿐 아니라, 중학교 진학을 위한 국민학생 과외까지도 대도시 위주로 만연하고 있었다. 이에 1968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의 문제점은 그대로 고등학교 입시로 전이된다. 이에 소위 '중3병'에 시달리는 중학생이 27%에 달하며, 중학생 중에 91%가 하루 4시간 이상 과외수업을 받는 다는 통계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계속 되는 입시를 통한 사회 문제의 발생으로 정부는 평준화 정책을 기안하고 시행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의 평준화 정책의 방향은 1)학교간 격차해소 2)과학 및 실업교육의 부흥 3)지역간 교육 균형 발전 4)교육비 부담 경감 5)학생의 대도시 집중 억제 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법률을 제장하고 아래와 같이 변천을 거치게 된다.

▶ 고교 평준화 변천 역사

1968년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도 도입

1974년

고교 평준화 실시

1977년

사학단체, 고교지원입학제 실시 건의

1980년

과외금지

1981년

예체능계, 기능계, 웅변, 꽃꽂이 등에 한해 재학생 학원수강허용

1982년

평준화보완계획수립(보충수업, 이동수업 의무화 등)

1989년

대학생의 초중고교생 대상 과외교습 허용

1990년

과학고, 외국어고 신설 등 고교 다양화

1995년

98년 이후 자립형 사학 허용 발표

1996년

일부 평준화 지역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 도입

2000년

과외금지 위헌결정에 따른 과외 전면허용

2001년

개인과외교습 신고제 도입

*자료: 한국일보

이에 따른 평준화의 실시/해제지역은 아래와 같다.

실시지역

1974

서울, 부산

1975

대구, 광주, 인천

1979

대전, 전주, 수원, 춘천, 마산(창원), 제주

1980

성남, 천안, 진주, 이리, 목포, 안동, 군산, 원주

해제지역

1990

목포, 군산, 안산

1991

춘천, 원주, 이리

1995

천안

실시지역

2000

울산, 군산, 익산(이리)

2002

고양, 부천, 안양, 과천, 의왕, 군포

*자료: 한국일보

최종적으로 2003년 평준화 실시 현황은 아래와 같다.

  1. 평준화 정책의 장단점을 따진다는 것은 연구 주체나 해당 주체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온 다는 것이 본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느낀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논점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가져올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득실을 따져 볼 때 각 논점에 대해 찬/반 주장을 모두 살펴 보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에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1. 선진국이라고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외국의 입시제도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체제의 타산지석으로 삼아보고자 한다.

    선진국의 고교 입시제도의 유형은 크게 배정형, 선발형, 안내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영국의 경우 공립학교는 배정형, 사립학교는 철저한 선발형이며, 공립학교의 경우도 우리나라처럼 무작위 추첨 방식은 아니며, 근처의 공립학교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원거리 통학도 가능하다고 한다.

선발형의 경우는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동양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외국과 우리나라와의 진학제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립, 공립 학교의 구분 없이 한 학군으로 묶어서 추첨을 하는 학생 배정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1. 우리는 앞서 우리나라의 평준화 정책의 역사와 이슈들,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준화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수정, 발전 시켜야 할 것인가?

    평준화 정책의 시행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쪽의 견해차이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는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 이 평준화 정책에 대한 쌍방의 주장이다. 어찌 보면 정답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사안이 바로 평준화 정책을 포함하는 교육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서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본질을 되찾고 방향을 분명히 설정한다면 평준화 정책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를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평준화 정책 이전에 교육의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신분 상승이나, 권력, 부의 축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인식 전환과 함께 현실에의 적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육체 노동에 대한 정당하고 합리적인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층 형성, 권력과 부의 축적 수단으로써의 교육의 도구화를 떨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던 육체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구의 사례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육체노동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수입을 육체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단순히 부의 축적을 위한 노력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삶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고등학문 보다는 현실적인 기술과 노동이 적절한 소득을 줄 수 있고, 이를 통해 개인적인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학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이 고등학교 진학률이 거의 100%에 육박하며, 심지어는 9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에서 대학 진학이 학문 탐구의 기회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평준화 정책의 근간이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라는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공교육의 정상화이다. 평준화 정책의 교육 기회의 균등 제공에 있을 것이다. 이는 교육의 주체가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평준화 정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진학을 위한 경쟁체제에서 평준화 교육을 해야 하는 공교육의 특성상 개별 교육, 차별 교육을 목표로 나온 사교육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앞서 대학진학의 본질에 대한 의견을 먼저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학의 문제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공교육의 정상화는 자연스레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짧게만 알아본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진학 교육에 대한 특수성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어떠한 형태의 공교육 정상화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교조에서 주장하는 대학평준화 정책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의 최초 시행이었던, 중학교무시험제도 -> 고등학교 평준화로 온 정책이 대학 평준화로 옮겨 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근본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능력과 자질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과거 한 반에 60명을 넘는 학급 규모에서 현재는 35명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고시라고 하는 임용시험을 통과한 선생님들의 자질, 막대한 규모의 교육 예산 등을 살펴보면 나는 공교육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재의 암담함은 모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여실히 들어난다. 이제 교육의 각 주체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신뢰할 수 있다면 공교육을 통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것이다.

    세번째 평준화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작은 예외들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준화 정책의 단점으로 부각되는 학생들의 차이를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 지는 각종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학교,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등의 운영이 결코 평준화의 보완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결국은 또 다른 입시 문제를 가져왔으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는 확대는 대학진학의 도구로의 고등학교만을 양산해버리고 말았다. 또한 영재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발생하는 수많은 영재 학원들, 우열반 편성 등의 요소는 작은 움직임 만으로도 평준화 정책의 틀을 깨어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은 학문탐구와 인성 함양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열화,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점점 심화되어 가는 현 상황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평준화 정책은 학생들을 공장의 공산품처럼 균등하게 만들자는 것이 그 본질이 아니고, 균등한 기회 제공이 그 본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균등한 기회 제공이 가능해 진다면, 개인이 가진 각자의 소질, 재능들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사회의 다양한 발전을 가져올 것임에 분명하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 – 현규, 예솔-이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끝-

    인용자료/참고문헌

    1. www.kedi.re.kr , 한국교육개발원, 정책자료실 등
    2.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25065 /오마이뉴스
    3. http://www.parksimon.com/welfare/a8.htm/ 청소년범죄와 사회유해환경/ 교수 박석돈
    4.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5/03/001065000200503141727024.html, 전교조 위원장 인터뷰, 한겨레 신문
    5. SBS 그것이 알고 싶다-우리들의 일그러진 교실 - 선생님들은 왜 침묵하는가?

고교체제개편에 관한 정책연구, 한국교육개발원, 1999

내가 학교다닐때도 매번 실패했던 그 저주의 풍선차를 만들었다.
이유는 "현규 내일 준비물" 이라는거~~~
바람개비가 좋겠다고 엄마, 아빠가 무지 꼬셨건만, 결국 실패.
집에 준비물은 한개도 없는듯 하고...

슬슬 모아 볼까나?

일단 풍선이 필요하겠지? 빨대도 필요하겠고, 바퀴로 쓸 병마개들.
사각형의 물통은 몸체로 쓰면 되겠군.

집에 있는 건, 지난 주일날 교회에서 들고 온 풍선 한개뿐..ㅠ.ㅠ.ㅠ
자, 물통이랑, 플라스틱 병마개 찾으러 재활용 통으로 고고.
아파트 재활용 뒤졌다..ㅠ.ㅠ..ㅠ
왜 병마개는 없이 몸통만 버린것이냣..
PET병 마개 겨우 6개 수거. 몸통으로 쓸만한 생수 대용량 찾음.

빨대는 앞에 수퍼에서 사이다 한병 사고 빨대 두가지 크기로 얻음.

이게 준비물만 주면 애들이 못하니깐, 어느정도까지 만들어서 보내야 한다.
안그러면 우리 아들만 시간내에 못만들어서 나중에 나머지공부해야 하는 아픔이~~

큰빨대로 몸통에 구멍뚫어서 목공풀로 고정.
병마개도 두개씩 붙여서 테잎으로 고정.
미리 구멍 뚫었다. 작은 드라이버로 구멍 뚫었는데, 작아서 드릴까지 동원했다.ㅠ..ㅠ

미리 조립해서 굴려보았다. 실패.
원인은 바람나오는 구멍이 너무 작군.
그냥 마개를 빼고 해보았다. 너무 바람이 빨리 빠져서 짧게 구동 되고, 그나마 방향을 잡을수가
없어서 그냥 휙돌아버림.
다시 큰 드라이버로 구멍을 좀더 크게 뚫음.
오호... 잘 굴러간다. 성공.

애키우기 어렵다....ㅠ.ㅠ.ㅠ

그래서 완성 - 정면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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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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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이렇게 가져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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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p1610이라는 모델을 사용하는 관계로 차에서도 네비게이션으로 사용이 가능해서,
PC용 네비 프로그램으로 이지윙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이 루센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베타 테스트를 하는데, 상당히 깔끔하고 좋아서
출근길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단점이 없을수는 없으나,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고, 화면도 깔끔, 맵경로도 우수하다.
근데, 베타 사용자 게시판에 가면 허접하다고 씹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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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남IC 입구
위 사진은 실제 도로 표지판이고 아래 사진은 네비게이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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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외곽순환도로 들어서는 화면.
왼쪽의 도로안내 화면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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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복정IC에서 빠져나가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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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터널 지나서 아파트 단지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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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순환도로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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