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개천에서 용'나는 길이던 사법고시가 있다.

사법고시 후 사법연수원을 거치거나 로스쿨을 하고 시험을 패쓰하면 법조3륜이라고 하는 판검사, 변호사가 된다.

100명 시절, 300명시절, 1000명 시절, 로스쿨 시절의 희귀성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이 법조계인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을 세워주는 큰 틀을 형성해가는 이들일거다..

이러한 이들은 어떤 학교 출신일까?에 대한 2013년도 기사이다.

놀라운건(뭐 아닐수도 있겠다, 예상 가능하니) 외고 출신, 특히 특정 외고의 비약적인 증가이다.

사실 우리또래(40대)에서는 고등학교 친구(라고 쓰고 그냥 동창)들이 판검사를 하기도 하고 의사를 하기도 하고 혹은 어디 조직의 두목이 되기도 하고 한다..

그러나 외고를 필두로 자사고등으로 고등학교를 나누고 나서는 이러한 관계를 아이들이 더이상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한 똑똑(?)한 이들의 단절이 이상한 판결들, 대다수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참으로 동떨어진 그들만의 판결들이 자꾸 나오게 되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x주 의원등, 꽤 젊고 샤프해 보이고 출신도 좋은 40대 정치인들, 경제인들, 법조인들, 언론 기자, 교수등 사회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이들이 사고를 뜬금없이 치는 이유도 그들이 이미 고등학교부터 그들만의 삶을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냥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이면 좋겠다. 의사, 판검사 하면서 얻는 권력, 금력, 부모/조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재력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들.. 이러한 것들이 이 사회의 발전을 막고, 민주주의를 막고, 같이 사는 사회를 막는다고 생각하기에..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71018

법률신문사는 국내 유일의 법조인명록 '2013년판 한국법조인대관'을 발간하면서 법조인 배출 명문고에서 외국어고의 강세와 특정 대학 편중 현상 외에 법조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다양하고 재밌는 통계들도 집계했다.

한국법조인대관에는 로스쿨 1기 출신인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1451명을 포함해 모두 2만1717명의 현직 법조인의 이력을 모두 담고 있다.

전체 판사를 놓고보면 외고 출신의 강세가 눈에 띄지만 부장판사 이상에서는 여전히 경기고 등 전통의 명문들이 주축을 이뤄 법조계 세대교체의 바람 속에서도 '명불허전(名不虛傳)'인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불혹(不惑)'을 맞은 1974년 범띠생 법조인이 전체 법조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또 전체 법조인 수가 지난 2009년 1만7689명에서 4028명 늘어난 2만 1717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남성은 1만7231명(79.3%), 여성은 4486명(20.7%)이었다. 2009년 여성 법조인이 전체 법조인 중 16.3%인 2885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4.4%포인트 늘어난데 그쳤지만, 올해 처음으로 배출된 로스쿨 출신 법조인의 41%(595명)가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여성 법조인 비율이 전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SKY 출신 62.5%로 5.1%p 줄었지만 강세 여전= 법조인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전체 법조인의 62.5%인 1만3564명에 달했다. 지난 2009년 67.6%에 비하면 5.1%포인트 줄었다.

서울대가 4년간 930명의 신규 법조인을 배출하며 총 8416명으로 1위를 지켰다. 고려대는 555명, 연세대는 418명이 각각 늘어 3320명과 1828명을 기록하며 2위와 3위에 기록됐다. 성균관대(1173명), 한양대(1114명), 이화여대(616명), 부산대(464명), 경북대(418명), 경희대(329명)도 2009년과 마찬가지로 각각 4~9위 자리를 지켰다.

전남대(310명)는 중앙대(307명)를 밀어내고 10위에 올랐다.

현직 판사와 검사 중에서도 SKY 대학 출신 편중은 여전했다. 전체 판사 중 1550명이 서울대로 가장 많았고, 고려대 408명, 연세대 168명, 성균관대 100명, 한양대 91명으로 뒤를 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판사는 19명으로 10위를 기록했다.

검사도 서울대 출신이 757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351명, 연세대 194명 순이었다. 한양대가 113명, 성균관대가 93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화여대는 모교 출신 판사와 검사가 각각 58명과 69명으로 집계돼 두 직역에서 모두 6위를 기록했다.


◇외고 급부상에도 부장 이상급 판·검사 전통 명문고 강세 여전= 현직 판·검사의 출신 고교 순위에서 외고의 강세가 무섭지만, 부장급 이상의 판·검사의 출신 학교 순위에서는 경기고 등 전통의 명문고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외고의 역사가 짧은 탓이다.

부장판사급 이상 법관들의 출신 고교를 보면 경기고가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고 19명, 전주고 18명, 서울고 13명, 광주제일고 12명 순이었다. 부장검사급 이상 검찰 간부들의 출신 학교도 경북고와 전주고가 각각 15명으로 가장 많았고, 진주고 12명, 광주제일고 11명, 휘문고 10명으로 뒤를 이었다.

외고 출신은 10위권에 모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법조인 수 2009년 17,6889명서 4,028명 늘어 21,717명
'SKY대학' 출신 13,564명… 전체 법조인의 62.5% 차지
출신지역 서울 4,907명 최고… 경북·경남·전남 뒤 이어
74년 범띠 910명 가장 많고 同名異人은 '이상훈' 18명 최다


◇출신지역 '서울-경북-경남-전남-부산 順'= 
자신의 출신 지역을 표기한 법조인 2만557명 가운데 서울 출신이 23.9%에 달하는 4907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북 2100명, 경남 1988명, 전남 1944명, 부산 1442명, 전북 1438명, 대구 1183명, 충남 1050명, 경기 1002명, 광주 723명 순이었다. 이북 지역 출신은 55명이었다.

광역시·도를 제외한 시군별 순위에서는 경남 창원(마산·진해 포함)이 365명으로 가장 많은 법조인을 배출했다. 전북 전주 341명, 경남 진주 254명, 경북 경주 203명, 경북 안동 188명으로 뒤를 이었다.

직역별로도 판사의 경우 서울 출신이 710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 305명, 경남 255명, 전남 239명, 부산 190명 순이었다. 검사는 서울 456명, 경북 203명, 전남 195명, 경남 187명, 부산 124명 순이었다.

◇1974년생 910명 가장 많아, 100세 이상도 4명= 생년월일을 밝힌 법조인 2만1299명 가운데 범띠인 1974년생이 910명으로 가장 많았다.

1981년생이 880명으로 2위, 1980년생이 875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또 1973년생 860명, 1972년생 834명, 1979년생 832명, 1975년생 824명, 1982년생 821명, 1976년생 800명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와 같은 뱀띠생인 1977년생이 784명으로 10위였다.

연령대 별로 보면 30대가 8099명, 40대가 6768명으로 30~40대가 전체 법조인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법조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50대는 3071명, 20대는 1558명이다. 60대는 878명으로 집계됐는데 고령인 70대 법조인 925명에 비해 47명 적었다. 100세 이상인 법조인도 4명이나 됐다.

페북에 썼던 글....

 

이 글 쓰려면 나도 욕먹을 각오로 써야할려나?

얼마전 욕먹을 각오로 쓰는 한국 교회의 오적이라는 글이 여기저기 뜨거웠었나 봅니다. 저는 페친들이 관련?된 분들이 많다보니 나도 초기에 가서 보게 되었고 그 덧글들과 반론들을 초기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게 확장되어 교계에서는 큰 이슈로 발전하게 된듯 하고 글쓴 목사님은 사과까지 하신 모양인데.....

싫은 소리 늘어놓은 이들은 밴드(찬양단)를 하거나 드러머거나 음향엔지니어이거나 싶습니다. 본인들이 교회에서 정말 노력하고 수고해서 드리는 찬양 형태에서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인 드럼을 거부하는 글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 소리와 관련된 교회(교계)내에서의 모든 분야에 다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고 사역을 하다보니 그게 평신도일뿐이지만 여러 시각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듣고 또 느끼게 됩니다.

한국사회가 통상 그렇지만 우리는 본인의 바운더리외의 다른 영역과 소통을 하는데 참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삶의 여유도 있어야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접하고 이해하는게 필요한데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리고 우리 교회, 교계에서는 그런게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게 현실이기때문입니다.

성가대 위주의 대형카페들에 가보면 찬양단, 특히나 밴드 음악이나 드럼사운드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표시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음향이나 찬양단 위주의 카페를 가보면 성가대, 합,중창, 오르간 등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되구요.

이러한 이유들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감당을 못할 것 같고...

저는 드럼 논란에서 나오는 반론들을 읽으면서 모두들 이상적인 상황만을 상정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러한 이상적인 상황과는 아주 거리가 먼 환경에서 드럼이 연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거죠.

드럼연주자들의 절대 물러서지 않는 드럼톤?이라는 것 때문에 어쿠스틱을 고집하거나, 백석짜리 공간이나 500석짜리 공간이나 심지어 몇천석 공간이나 동일한 드럼 생톤을 내고 나머지 악기들, 모니터링들을 맞추는 상황들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고 본인의 톤만을 만족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내는 음압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회중이나 다른 악기 및 싱어들의 고충은 무시하는 것들은 언급이 거의 안되는 상황..- 역시나 경험 많은 모집사님의 언급이 있기는 했었지만..

교회음악이라는 장르에서 가능한 모든 악기를 쓰고, 새노래로 찬양하자는 큰 전제는 예수님 오실 날까지 가져갈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의 수단으로써 존재한다는 걸 교회 안에서 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이 잊는 건 아닐까 합니다.

이는 굳이 드럼이 아니라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피아노가 성가대 반주를 하는데 불과 20명 남짓한 대원들의 소리를 압도해 버리면서도 본인은 클래식 전공이라 터치를 살려야 해서 작게 치면 안된다는 반주자..

성가대원과 피아노까지도먹어버리는엄청난볼륨으로 연주하면서 원래 파이프 오르간처럼 이정도는 나와줘야 한다며 볼륨 올리는 오르간 연주자...

성가대원들 중에서도 본인은 전공자이고 크게 내는게 도움을 주는거라며 질러대는 대원들..

찬양단 모니터링 안된다고 크게만 크게만을 외치는 싱어들과 악기주자들..

저음이 이정도는 나와줘야지 하면서 나오지도 않는 저음을 올려대는 엔지니어들도..

사실 음악이야 말로 예배의 두축이라고 할만큼 큰 역할을 함에도 그 투자에 비해 나오는 결과물이 크지 않기에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면서 벌어지는 수준의 저하가 이런 논란을 가져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지금의 열악한 상황들.. 작은 교회들에서는 회중에서 노래만 불러줘도 감사할만큼 봉사할 사람들이 없고.. 교회 음악을 클래식이든 실용음악이든 전공을 해도 변변히 사역을 하거나 수입을 얻을 자리 찾는것도 거의 불가능하고, 교회에서는 믿고 맡길 사역자를 찾고 싶어도 예산도 없고 사람도 없고..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사역하는 이들이 다투고 싸울일만 생기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음악을 가지고 사역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 전에 하나님께 귀하게 드리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이 아름답게 삶을 살아가는 그런 환경이 오길 기도합니다.

 

지휘자로 역할을 감당한지 딱 육개월이 되었습니다.
얼치기 아마츄어가 사오십명에 이르는 성가대를 이끌어간다는게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정말 좋으신 대원분들과 반주자님들 덕분에 어찌어찌 흘려보낸게 벌써 반년..

그 과정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곡..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도 마지막도 모두 선곡.
정해진 곡을 최선을 다해 해석하고 리허설을 하고 연주를 하는건 언제든 감당할 수 있지만 선곡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일주일에 한곡 고르는게, 그것도 3,4분짜리 노래 하나 선곡하는것도 그럴진데.. 설교는 어떨까 하는 감히 공감을 해봅니다.

지난 5월 37년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신 장상래 원래 목사님의 글이 교단 신문에 실렸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목사님 참 훌륭하시다.. 는 생각과 동시에 난 참 행복하고 운?이 좋은 성도구나.. 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적어도 목회자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해주었으면 하는 요소들이 정확하게 쓰신글과 맞았기 때문이고, 지난 십수년간의 은평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해 목사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살아올 수 있었기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교회는 시끄러울거고, 여기저기서 개독 소리는 울려날거고, 여전히 이상한 교리들, 교회들, 교단들, 이단들이 일어날거고 교회내에서 상처받는 일들도 많겠지만 이런 담임목사님과 같이 간다면 더이상 아쉬울게 없을거다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가수가 노래를 잘 불러야하는것처럼,
연주자가 악기를 잘 연주해야하는 것처럼,
목회자는 설교에 100%이상을 쏟아 부어낼 수 있는 이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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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epress.kr/6086/

지난 5월 10일 동서울노회 은평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고 원로목사직에 취임한 장상래 목사의 목회자 세미나 초청 강의 중 일부를 발췌허락 받아 싣는다목회 일선의 동역자들에게 뜻깊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목사와 설교  

< 장상래 목사, 은평교회 원로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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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심으로 사는 목사에게 설교는 목회의 꽃이요 생명  

교회를 잘 섬기는 길은 설교에 진력하고 설교한 대로 사는 것  

 

교회와 목회 중심의 목사

   목회자에게 최고의 가치관은 교회뿐이다교회가 참되게 부흥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진다면 더 큰 소망은 없을 것이다지난 은혜의 길목에서 나는 복잡한 인생의 문제들도 교회에 유익이 없으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교회 문제 외에 나머지에 대해서는 별 애착이 없었다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처음 개척할 때는 매달 첫 주는 반드시 기도원에 올라갔다아버님의 소천 때도 장례 후에 바로 기도원에 가버렸다그걸 보고는 이웃 교회 목사님이 대단하다고 했는데목회자가 교회 중심으로 생활방식이 완전히 확정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는 정이 많은 편이나 목회 사역에서는 정에 매이지 않으려 애썼다형제 7남매가 다 모여도 때 되면 책 보따리를 싸서 기도원에 갔다나는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중요한 것만 생각한다어디 볼만한 곳에 여행을 갔다 와도 모든 것을 금방 다 잊곤 했다여행 사진을 다시 봐도 금방 생소할 만큼 다 잊어버렸다교회와 목회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설교를 목회의 생명으로 삼는 목사

   그런데 교회가 참되게 부흥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라는 이 목회의 큰 소망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설교이다나에게 일주일 단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한 가지만 말하라면 당연히 설교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목회의 가장 큰 주제였다목회의 꽃이 설교이다설교는 목회의 생명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설교를 잘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 한 적이 없다그래서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나는 거의 고정적으로 금요일에 기도원에 가서 설교 준비를 완료하고 다음 주일 본문과 제목도 미리 정하여 토요일 저녁에 내려왔다해외에 나가도 어지간하면 금요일에는 들어왔다만일 토요일에 혼인 주례를 하면 하루 앞당겨 목요일에 기도원에 올라갔다.

   사실 바쁘게 심방을 하고 보니 도무지 설교 본문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어떤 경우엔 아무리 뒤져 봐도 설교할 분문이 안 잡히고 설교 할 내용이 없었다너무도 고통을 겪었다그러다가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며 설교 본문을 접해 보니 어렵지 않게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고 다음 주일 본문 제목도 미리 정할 수 있었다.

   목사의 영성은 설교를 준비할 때와 설교 할 때에 최고조에 이른다외모든 학벌이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목사도 강단에서 잘 준비된 은혜로운 설교를 하면 모든 성도들이 아주 감동을 받고 목사를 좋게 본다하나님이 그렇게 쓰신다목사가 강단 밖에서는 볼품없어 보여도 설교하는 강단에서는 빛나 보인다목사가 설교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최고의 상태에서 사용하신다.

   언젠가 내 설교 테이프를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시장에서 일하는데 나를 직접 만나고 싶다며 잠깐 들르라 해서 갔더니 목사님그 장 목사님 맞으세요키가 이렇게 작으세요?” 했다그래서 키는 작아도 내가 은평교회 그 장 목사 맞습니다라고 하며 피차 웃었다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도 그렇게 쓰신다.

   이처럼 목사의 영성이 최고조일 때는 설교를 준비 할 때이다그러므로 목회자는 스타일은 각기 달라도 설교 준비를 위한 자신만의 시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내 경험으로는자신만의 시공간에서 설교 준비를 할 때 다음 주 본문을 미리 정하면 한 주간 내내 그 본문과 주제에 관련하여 생각을 집중할 수 있고 그 설교의 내용도 풍성해진다목사에게는 심방과 전도와 교육이 다 필요하다그러나 심방하고 전도하고 교육하는 일로만 부산하게 뛰어 다니면 정작 설교가 안 보인다재삼 명심할 것은 무엇보다 설교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나는 설교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렇습니다저렇습니다까지 원고에 다 썼다너무나 자신이 없기에 그랬다사실 심방할 때도 마음으로는 설교에 대해 고민했다그만큼 부담을 가졌다늘 설교 자료를 고민했고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아도 설교 생각을 했다설교 사역으로 가장 잘 섬기는 것목사가 설교를 설교답게 하는 것이 목사의 최우선 사명이다

   목회자가 아무리 인품이 착해도 설교에 실패하면 결국 성도를 멸시하는 것이다전도를 잘하고 심방도 잘하고 사랑을 많이 베풀고 인간관계가 좋아도 설교를 못하면 제대로 목회하는 것이 아니다성도들이 일주일 내내 말씀을 사모하며 어렵사리 주일날 달려왔는데 깨달음을 주고 마음에 흡족한 은혜로운 설교를 못 들으면 얼마나 안 좋은 일인가영적으로 갈급한 성도들을 일주일간 방치 한 거나 다름없으니 그 얼마나 성도를 섬기지 못한 일인가.

설교한 대로 사는 목사

   설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을 덧붙이자면 바로 설교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개척 초기에 교단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강사가 홍정길 목사님이셨다그때 목사가 교회를 가장 크게 잘 섬기는 것이 뭐냐설교한 대로 살아 주는 것이 교회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다라는 그분의 말씀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전까지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은 그저 죽자 사자 열심히 뛰는 것인 줄 알았는데 목사가 설교한 대로 살아 주는 것이 성도와 교회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라는 홍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감동과 충격이었던 것이다그래서 그후로는 그때 배운 바대로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목사가 설교도 잘 해야 하지만 그 설교대로 살아 주는 것이 성도를 가장 잘 섬기는 것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요즘엔 좋은 책과 자료도 많아서 부지런히 기도하며 노력하면 설교 준비는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지만목사가 설교한 대로 안 살면 성도들은 상처를 받고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게 된다. “설교를 하신 목사님도 저러는데 우리는 뭐 특별히 애쓸 거 있나…” 이렇게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가라앉아 버린다무엇보다 가정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설교는 저렇게 해놓고 집에서 하는 언행은 설교대로 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속으로 무시하게 된다그러면 가정생활도 자녀교육도 원만할 수 없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에 붙들리고 경건이 깊으면 목회를 해볼 만하다이것은 맞다저것은 아니다 하는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긴다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갈등이 그리 많지 않다그런데 영적인 방황에 빠지는 이유는 균형이 안 잡혀서 그렇다몸의 균형이 안 잡혀 있으면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 듯이 영적인 활동도 그렇다그 영적인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바로 설교이다목사가 설교한 대로 살아서 영적인 균형이 잡히면 가정생활도 안정되고 성도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

참 좋은 목사

   목사가 교회와 목회 중심으로 살고 일주일 내내 설교로 씨름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은 어쨌든 일단 괜찮은 목사이다더욱이 설교한 말씀대로 살고자 부담을 느끼는 목사라면 참 좋은 목사이다이 점에서 나는 어떤 목사였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그러나 참 좋은 목사가 되려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발버둥친 것만은 사실이다.


얼마전 합하세라는 다음 합창관련 카페에서 합창단 공연 알림을 보다가 고양시립 합창단 안내 포스터 봄.

집은 강동이지만 직장이 고양시라 아람누리가 15분거리.. 퇴근이 늦어지는게 부담이라 가볼 엄두도 못냈는데 합창단 공연을 자주 보는게 우물안 개구리 지휘자를 벗어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어 자주 찾아보기로 맘먹은 터라 지난번 코리안 싱어즈에 이어 두번째로 예매를 했습니다.

아람누리는 전에 음향 회사(사운더스)에서 기술팀장으로 근무할때 담당하던 믹싱 콘솔이 설치된 곳이라 업무차 종종 방문하고 관련 건축음향 얘기도 들었었지만 실제 공연을 보러 간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았나 싶네요. 

공연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으로 베르디의 'Requiem'.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egloos.zum.com/cmichael/v/1174671 이 링크를 참조.

두번째 곡이 아주 익숙해서 들어보면 다들 '아, 이곡!" 하지만 전곡을 들어보기는 쉽지 않을듯.

일단, 진혼곡이라는 특성 답게 무겁고 웅장한 곡을 감정의 흐름을 상하지 않도록 인터미션없이 전체를 한번에 공연. 좋았습니다. 당연한건가?

네명의 솔리스트와, 90명쯤은 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고양시립, 수원시립의 연합 합창단도  90명쯤?

이런 대규모 합창곡은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경헙이었습니다. 

미리 연주곡이나 연주형태를 생각하고 좌석을 선정했어야 하는데, 일반의 공연처럼 찬조 정도로만 생각했던 큰 실수를 저질러서 지휘자나 대원들을 잘 보겠다고 가장 앞자리를 예약하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연주의 결과물을 놓고 평을 하기 참 난감한 감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자쪽 앞자리여서 두분 솔리스트의 소리를 불과 2,3미터 앞의 면전에서 감상하게 되어버려 전혀 울림이 없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이때문에 솔리스트 연주가 가장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나마 알토, 소프라노 솔리스트는 거리가 있어서 공명된 소리를 어느정도 들었는데..

합창 소리는 앞좌석이 무대보다 낮다 보니 무대 위의 반사판이 역할을 하고 공간을 돌아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정말 좋았던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 역시 무난한 연주였던것 같네요. '무난'

문제는 합창 /오케스트라 / 솔리스트의 앙상블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앉은 좌석 위치의 문제도 있는데 오케의 소리가 합창을 충분히 압도해버리는 상황이 특히 메조 피아노 이하의 음량에서 자주 발생해서 합창을 느끼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솔리스트는 앞에서 잔향 없는 생소리로 들리고 오케스트라 소리는 크고, 돌아나오는 합창단 소리는 부드럽게만 들리는 난감한 상황...

전기음향을 전혀 쓰지 않도록 공연하신것 같은데 중층 앞자리가 정말 간절해지더군요. 좋은 공연을 기대하지 못하는 가장 많은 케이스가 합창과 밴드와의 공연인데 같은 이유로 앙상블을 고려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인데 이번엔 전기음향이 없어서 더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때문에 오케만, 합창만의 곡들은 모두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리스트는 어떻게 섭외하시는지 궁금하던데..

일단 네분 중엔 앨토 선생님이 정말 좋았습니다. 앨토에서 메조까지의 영역을 고른 음량과 음색을 유지하며 부르시는게 바로 앞에서 들었음에도 공명된 소리로 들려서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소프리와 이중창을 하실때 일부러 발란스를 맞추려 성량을 좀 줄이시는거 아닌가 싶은데 너무 줄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이 또한 제 자리의 영향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소프라노 선생님은 발동이 좀 늦게 걸리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낮은 음역대에서 조심스럽게 부르시느라 힘들어하신 느낌이었는데 두번째 곡 이후 부터는 확실히 나오시고 마지막 솔로곡은 정점을 찍으신듯.. 아쉬운건 저역 대에서 성량이 너무 적어지지 않았나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저역대에서 드라마틱하게 불러주신게 좀 과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테너영역이 사실 제 자리에서 가장 힘든 위치였습니다. 음역의 특성상 볼륨도 적고 공명을 만들기도 어려워서 마이크 없이 공연하기 가장 힘들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베이스도 어느정도 공명이 있는데서 불러서 그 편안함이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을텐데 너무 앞에서 들어서.ㅠ.ㅠ. 곡을 충분히 소화하시고 부르시는게 정말 부러웠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거의 균등한 비율로 가져가야하는 곡이고 각각 연주되는 부분, 함께 하는 부분들에서의 비팅이 대단히 혼돈스러울수 있을텐데 세 경우를 모두 확실하게 비팅을 해주시던 지휘자 선생님의 비팅이 가장 인상 적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건 합창의 발음처리에서 's'로 끝나는 부분에서 일관되게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 지저분한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게 비팅으로 지시하실때 현악지휘의 비팅처럼 마무리가 되어서 합창에서 소리가 흩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또한 제가 너무 앞에서 들어서 이런 치찰음들이 선명하게 들린 이유도 있을꺼라 의심해봅니다.

차라리 한국어에서는 자음만으로 끝나지 않고 항상 모음이 붙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치찰음 문제가 덜한데 외국어 특히나 라틴, 영어권은 자음만으로도 발음이 되기떼문에 이러한 발음처리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서로 다른 세개의 기관이 모여 공연을 하신건데 연습은 어찌 하셨는지 지휘자는 본인의 해석을 어떻게 타 기관들에 전달하고 연습했는지가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점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무난한 공연이었고 좋은 대곡을 잘 연주하셨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연중 계속 눈에 거슬렸던 한가지.. 옆으로 앉으신 여성 연주자분이 나시를 입으셨는데 연주 특성상 속옷이 계속 노출되어서....

장점 : 좋은 곡, 좋은 공연 잘 들었습니다.

단점 : 아 내 자리....ㅠ.ㅠ. 


2017. 5. 27일 토요일.

운전을 하다가도 아름다운 교회를 보면 이름을 기억해놓을려고 하고, 해외 출장 중에도 멋진 교회들은 꼭 들러보고 사진을 남겨보는 나에게 '생명의 빛, 예수마을' 교회 방문에 대해서는 버킷 리스트 중의 1순위였습니다. 몇년전, 전 직장 동료의 작업 사이트 소개에서 처음 보았고 이제껏 보지 못한 건축물이라서 맘에 다져놓았었고, 이후로도 관심을 가진 교회였었지만 거기까지 가는건 정말 오래걸렸네요.

자주 다니는 합창관련 카페에서 우연히 본 합창단의 정기공연 포스터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사진이 바로 이 교회의 본당 사진이었습니다. 그 합창단은 '코리안싱어즈' 홍정표 교수님이 지휘하는 합창단. 이 교수님은 세미나에서도 가끔 뵈었고 항상 지휘하시는 공연을 보고 싶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 아니랄수 없겠네요..

교회 성가대 밴드에도 안내문을 붙이고, 식구들에게도 토욜 약속 빼라고 해놓고..

그러나 막상 당일날 간건 우리 막내랑 아내랑 셋이서만 ..

집이 강동인고로 일단 설악IC까지는 막히지만 않으면 금방.. 거기서부터 국도랑 산길을 15km쯤 달려서 도착.

 

도착해서 내려다 본 예수마을http://jesusville.org/web/main/main

아래쪽부터 안내판에서는 다일 공동체 표지판이 계속 되는데 사실상 같은 장소에 위치해 있다. 갑자기 어떤 관계인지 궁금..

여튼 입구에 보이는 다일 공동체 푯말들을 넘어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유리창으로 마감된 건물이 보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유명한 사진들에서 보는 그런 이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사진과 같은 소개판이 있고 거기에는 홍목사님도 항상 말씀하시던 두 분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로비를 채운 예술품들이 보여서 느낌은 교회가 아니라 미술관을 방문한 느낌? 그 로비를 지나 좁은 문을 지나면 드뎌 그렇게 이미 익숙해져버린 본당이 나타납니다.

본당의 천정과 벽면을 가득채운 러시아 홍송. 네 곳에 위치한 파이프 오르간. 그 뒤에 수줍게 자리잡은 스피커. 스피커를 제외하면 정말 인공적인 게 느껴지지 않은 왠지 자연에 있는 듯한 느낌.

360도 원형 회중석이기 때문에 본당에 들어서면 사실 어디가 강대상인지조차 불분명하고 실제 강대상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실제 예배가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이 회당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모두 같은 위치에 있음을 자리에 앉는 것 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

그래도 음향밥 먹었던 입장에서 이 공간 자체의 건축음향 특성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일단 큰 소리는 생각보다 1차 반사음이 크지 않아서 잔향을 보는것만큼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천정의 나무들과 기둥으로 세운 나무들이 모두 디퓨져의 역할을 하고 있는거 아닌가 싶네요. 대신 작은 소리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도 맞은편 좌석까지도 잘들렸고, 원형 구조상 초점 현상이 이지 않나 싶은데 측정했던 기록을 살펴보고 싶은 .. 물어볼 사람 있을텐데~~

여튼 이러한 음향적인 특성이 공연의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합창을 통해서도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들은 자리가 맞은편이 아니라 합창단 자리 바로 옆이었다는건데때문에 반사음(잔향)없이 직접음을 바로 들어서 너무 힘들었다는데 있었는데.. 중간에 맞은편으로 가서 서서라도 들어봤어야 하지 않나 하는 후회가..

Korean singers는 서울장신대 홍정표 교수님의 지도 아래 전공자분들 위주로 구성된 합창단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곡은 한번 들어보고 싶었던 Korean Mass (홍정표 곡)를 비롯한 자장가 모음, 친숙한 가곡들이라서 비전공자에게는 Korean Mass만 버텨주시면 즐길만한 곡들이에요, 참아주세요.. 라는 느낌?

여튼 Korean Mass에 대한 소개와 함께 공연 시작. 이후로는 다른 인터미션이나 곡 소개 없이 끝까지 한번에 진행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곡의 절반 이상을 아카펠라로 채워서 상당히 인상 깊었고, 반주와 같이 연주되는 곡들도 잘 어울렸는데 특히나 피아노와의 어울림이 인상 깊었고, 플룻 등과의 개별 악기들과도 음량이나 음색이 잘 어울렸습니다. 아쉬운건 솔로악기나 솔리스트들이 합창단의 중간에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게, 앞서 느낀 음향의 영향으로 각 악기의 방향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면이 있어서 분리되어 들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베리톤이라서 베이스 파트 관심 많았는데 4명의 소수임에도 음색이나 성량이 대단해서 충분히 커버를 하시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음량의 발란스 때문에 너무 크게 내는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잔향이 충분한 공간이면 반사음으로 많은 이가 선 느낌을 주는데 제가 앉은곳에서 들은 잔향으로는 베이스가 직접음으로 들려서 어색함이..

소프라노 파트는 특정 고역에서 플랫이 심하게 되는걸 느꼈습니다. 어느곡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아예 반음쯤 떨어진 곳도 있었고.. 다만 아카펠라 곡들이 많았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신부분이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앨토는 인원에 비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고 한두분의 성량으로 커버되는 느낌이어서 아쉬웠습니다. 앨토나 베이스의 경우는 아무래도 아무리 좋은 음색이라도 소수의 성량보다는 다수의 대원을 묶어서 내는 음색이 나올 때 안정적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부분에서 아쉬웠네요.

테너의 경우는 항상 그렇듯이 좋은 음색과 피치를 가지고 불러주셔서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웠던건 첫소리를 내는데에서 계속 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좋은 발성을 위해서 공명을 준비하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네요.

전체적으로 아쉬웠던건 이 합창단이 분명히 이보다 훨씬 좋은 소리로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 팀이라는 느낌은 드는데 연주회 내내 산만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피치나 박자 모두가.. 특히나 Korean mass 같은 곡은 1번 레퍼토리로 여기고 연습을 하실텐데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지는 못해서.. 결국은 성가곡에서 였던가? 도입부를 놓치는 사고도 나고..

제 결론은 연습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아니면 대원분들의 변경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뭐 틀리거나 말거나..

중간에 특송으로 불러주신 시각장애우 분들의 특송은 정말 좋았습니다. 피아노는 마이크 없이 하면서 듀엣만 마이크를 쓰는데 다행히도 그 볼륨이 적당했고, 워낙 많이 불러보신듯 살짝 불안해서 사고날만하겠다 싶은 후에 오히려 바로 자리를 잡아가서 복구하는게 인상싶었습니다. 처음엔 긴장해서 음정이나 박자가 조금 불안했지만 중반부 이후로는 좋아졌고, 후반부에서는 솔로부, 듀엣부 모두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불러주셨네요.

마지막으로 고향의 봄 앵콜은 제가 감사했습니다. 이런 좋은 공간에서 맘껏 노래 불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게 쉽지 않은데 기회를 주셔서~~~

홍목사님의 마지막 설명, 후원 요청은 좀 짧았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급작스런 찬송가로 코드를 높게 잡아서 아주 우렁찬 폐회송이 되었네요. 아마 반주자님 많이 당황스러우셨을듯.

제가 아주 짧은 소견으로 아쉬운 점을 위주로 썼지만 사실, 전체적으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좋은 합창단의 무반주 창작곡들을 정말 좋은 공간에서 맘껏 듣는 것 자체가 정말 오랜만에 누리는 행복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해서 더 좋았네요.



몇년전부터 정말 관심있었고 강원도쪽 갈 때마다 국수교회 표시판을 보면서 꼭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교회인데 이번에 드뎌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금, 토욜을 교회에서 하는 아카펠라 중창팀과 함께 산음휴향림에서 MT 비슷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야 뭐 악기나 음향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아무데나 발길 가면 그곳이 연습실이긴 하는 팀이라~~ㅎㅎ

유부남 세가정과 처녀 두 자매로 단촐하게 갔는데, 가면서 부터 이런 교회가 있는데 시간 되면 한번 오면서 들러보자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마지못해 별게 있나요? 하는 정도로 반응이 있었는데 아침 식사 이후 스케쥴이 남아서 그럼 교회 들르자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그냥 아담한 교회여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요? 그러더군요.

 

입구에서 토욜이라 청소하시는 연세드신 사찰집사님(?)이 계시고, 누구한테 여쭤볼까 하다 여자분이 일하셔서 여쭤봤더니만 진철하게도 본당까지 안내해주시더군요. 나중에 청년부 전도사님이라고 하시길래 신현형제 이름을 좀 팔았습니다.ㅎㅎㅎ

 

본당을 들어서니 워낙 사진으로 자주보던 곳임에도 실제 접하니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그때부터 우리 멤버들이랑 식구들도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그 작은 공간에 넓은 무대와 강대상, 시골교회임에도 놓여져 있는 챔버의 의자수.. 등등..

 

그리고 우리팀이랑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공간~~

 

당장 딱 필이 꽂혀서 우리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들을 불러 보았습니다.

관객은 우리 식구들 세사람이었지만 얼마나 좋았는지...

한 30분 부르면서 말 그대로 행복해지더군요.

 

밑천 떨어지고 나갈려고 하는데 밖에서 들으셨는지 사찰집사님께서 보여주실곳이 있다고 저희를 안내해서 1층 작은 공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은 작은 모임들을 가질 수 있는 룸들과 공간이 있었는데 주위 벽엔 그간 있었던 문화행사들이 걸려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어서~~~

 

그 공간은 둥그런 형태의 공간인데 벽을 빙 둘러서 최근 행사들의 안내 걸게들이 걸렸있었습니다.

같은 사이즈로 걸게를 프린트해서 쓰시던데 최근의 행사만 걸려있고 시간이 지나면 친교실로 옮겨 놓으신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대략 20개 이상 걸려 있었던것 같네요.

 

그곳을 둘러보고는 친교실이라는 작은 카페 같은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거기는 주방까지도 개방이 되어 있는 곳이어서 우리 자매들이 직접 있는거 찾아서 꺼내 차를 마셨습니다. 헐~~

테이블이 대략 4~5개 정도 되었던것 같은데 웬만한 허접 카페들은 저리 가라고 할정도로 너무나 안목이 높은 인테리어 더군요.

그곳에서 우리끼리 마치 우리 교회인듯 차를 마시는데 어느분이 들어 오셨습니다.

딱봐도 포쓰~~가 목사님이신것 같아서 인사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야기를 알고 갔지만, 웬 뜬금없이 교회냐는 분위기였던 우리 멤버들은 목사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에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죠.

목사님께서도 목회사역의 방향, 교회의 현황, 운영 방법, 그 결과들, 그리고 동역과 비젼  등등등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처음 뵙고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이렇게 담소를 나누는게 가능한게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엔지니어들 모이면 통성명없이도 수다를 떠는 바로 그 모습이었나 싶어요. 하나님 안에서의 공통의 관심사 말이죠~~

 

우리 아줌마들은 교회의 인테리어에 깜짝 놀라더군요.

심지어는 교회 로비에 있는 가구들은 직접 만드시는지, 사오시는지, 누가 하시고, 업자를 통하시는지 직접 하시는지 등등등..

본당 강대상의 꽂꽂이는 백미라고나 할까나?

사진에서 잘 안보이는데 저게 유리우유병에다가 식물을 심어서 강대상에 걸어둔거랍니다.

참 많은 생각을 했죠. 일회성 아름다움을 위해 생명을 꺽어서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저렇게 지속가능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리..

곳곳에 배치된 가구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각종 안내판과 걸게들..

이 교회에서는 이미 모든 분들이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제 업자 소감을~~

본당의 컨셉은 일종의 회랑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의 마당놀이 판이라고 해도 될것 같고, 고대의 작은 아고라?

별로 커보이지 않는 공간이라는 느낌은 강대상과 회중석이 그만큼 밀접하다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 공간임에도 회중석은 350석 정도 된다고 하니 참 알차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담한 공간의 건축을 독일에 설계를 의뢰해서 받았다고 하시던데 처음부터 원하시는 사역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었기에 이런 좋은 공간과 운영이 가능한 교회가 되었겠다 싶더군요.

일단 사진처럼 벽체가 모두 적벽돌과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잔향이 많구요, 방송실은 강대상 맞은편 위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그 곳이 가장 소리 좋은 곳이 아닐까 싶던데 올라가보지 않아서리~~

세심하게 신경을 쓴걸 느끼는게 본당의 문들이 모두 방음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입구도 세군데로 균등하게 되어 있었구요.

강대상에 신디 몇대가 보이는걸로 봐서는 찬양단도 잘 하실것 같은데 실제 운영은 대단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조금만 욕심(엔지니어로써의)을 버리면 정말 멋진 회중 찬양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악기들도 웬만하면 어쿠스틱 사운드로 만들어서 공간에 뭍을 수 있으면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귀터져라 쏟아내야하는 압박 없이 회중과 함께 찬양하는 그런 예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문제는 드럼.ㅠ..ㅠ.ㅠ

드럼 빼고 봉고나 퍼구션 정도로 해야할껄요? 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것도 아이디어 일듯 싶고요~

 

이런 외적인 것들보다 더 대단한건 역시 컨텐츠이고 소프트웨어이고 운영이겠죠?

저 나름대로는 이 지역이 특수한 점이 몇가지 있는데 먼저는 지리적으로 수도권이고 서울에 멀지 않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그럼에도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이라는 겁니다. 서울에서는 가깝지만 농업외에 특별히 지역경제의 기반이 없다는 건 젊은층이 있기 어렵다는 거겠죠. 이런 상황에서 문화 사역이 이렇게 최고의 완성도를 가지고 운영하신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는 한방에 느껴지더군요.

실은 담임목사님이 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몇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88년도에 부임하셨고, 성악을 전공하셨고, 동생목사님과 동역하고 계시고 두분 형제목사님과 사모들이 전문사역을 하시면서 외부 강사분들을 모시면서 문화목회를 해오고 계시다는 정도이던데 관련된 기사들 대부분이 가보면 놀라는 문체가 드러나더군요.

88년 국수리라면 교통도 힘들고 정말 시골이었을텐데 그런 상황에서 젊은 목회자들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있는 교회를 세워가시는게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엔 공연 운영을 위해 예산도 필요하고 섭외라든가 여러가지 상황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연 스케쥴을 조절해주어야 할 정도로 공연팀들이 줄서 있는 형편이라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한번 공연을 해본 공연자들은 또 서고 싶어하셔서 이제는 섭외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실은 이건 본당에서 연습을 해보면서 느낀 점인데, 이런 공간에서 무대에 선다는 건 연주자로써는 상당히 부담스러울겁니다.

본인이 무대에 있기보다는 사방에 둘러싸인 바로 앞의 관객들로 인해 같이 있는다는 느낌을 받게 될것 같았거든요.

그러니 오히려 이런 무대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게되는 부담감이 있지만, 공연을 진행하면서 관객과의 일체감, 공간과의 일체감은 그냥 잔향이 많아서 좋다 수준을 넘어서는 최고의 감동이 연주자에게도 동일하게 줄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목사님께서도 연주자들이 공연이 끝나면 그걸 너무나 좋아한다고 하시더군요.

 

더 좋은 건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는것 같습니다.

공간의 특성상 클래식 공연에 아주 어울리는 관계로 그 쪽으로 많은 공연들이 열리게 되는데 이런 공연들에 교인들이 전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금요일 등 평일 저녁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200분 이상의 관객이 공연장을 채우신다고 합니다.

이런 참여는 공연자들에게는 더 큰 매력이기도 할 것 같더군요.

목사님 말씀은 시작하기 전까지는 참 부담스러워 하시지만 공연을 끝내고 나면 항상 만족하고 가신다고 하더군요.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간단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역할은 공연에 참여해주는 것이고 어린 친구들의 역할은 공연을 보고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 이라는겁니다.

게다가 사찰집사님의 말씀처럼 공연을 통해  적극적인 교회 홍보를 거의 하시지 않기때문에 누구라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이 당근 하루아침에 이루어질수는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감당해야할 몫을 찾고, 그 방향으로 사역의 방향을 정하고, 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열매를 맺기까지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멋진곳을 볼수 있게 된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그보다 더 좋은건 목사님이나 사찰집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느낀 짧지만 강한 그 멋진 말씀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 강하게 추천드리니, 양평 근처 다니시다가 생각나시거든 꼭 한번 들러보세요.

 

http://www.cr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0

 

http://www.monul.com/monul/bbs/board.php?bo_table=gos_report&wr_id=13&page=3&PHPSESSID=3e1d311b09ff08b3e222f22df8c3ebfb

가서 본건 아니고...

시간 여유가 생긴 토욜 오전을 투자해서 전체 키노트 및 디벨로퍼 키노트 봄. 

한마디로 그 엄청난 변역의 한 중간에 서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슬로건을 'Mobile first to AI first"로 바뀐게 그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던것이다.

2015년 구글포토의 무제한 저장공간을 오픈하고 2016년 상반기 딥마인드 이벤트, 하반기 인공지능 적용 번역에 이르는 일련의 진행을 정리해준 느낌.

순다이 CEO의 오프닝 멘트 이후로 거의 모든 개발 분야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었고 그 모든 것들에 거의 모두 AI가 적용되었다.

인간이 개발 AI시스템이 머신러닝을 통해 성장하고 그걸로 사람을 편하게 할 뿐 아니라, 이제 사람을 판단하고 분류하기까지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1,2년간의 머신 러닝을 통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음성을 인식하고 AI의 판단을 제시해주는 단계에 이르렀고 그 결과, 누군가 취업관련 검색을 하면 인근 지역 회사를 알려주고 그 사람과 매칭이 되는 회사, 업무, 포지션까지 제안해준다. 이미 몇몇 대형회사들이 리쿠르트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고 하니..

각 세부 사항은 동영상에서 확인해보시길..

그리고 이렇게 얻어온 결과들을 오픈소스로 제공한다. 자기들의 생태계에 들어오면 이런걸 다 써서 개발자들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겠지.

이러한 소프트웨어에서의 엄청난 진보가 다른 나라, 다른 회사들에게는 더이상 쫓아갈 수 없는 정도가 되어버린것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제공하는 플랫폼안에서 살아가는 정도로 머무르지 않을까 싶다.

20년전쯤 전 IBM의 음성인식, ETRI에서의 한국어 인식, OCR인식 등 한국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수출까지 하던 소프트웨어가 이젠 더이상 경쟁따위는 생각도 말아야할 시점에 이른것은 아닌가 하는 ... 아쉬움 + 두려움

예전 하드웨어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모든 전자부품부터 IC까지 한국산으로 제품을 만들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 전자부품 제조사가 남아나 있을까 싶다.

제조업이 약해지고 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를 여기서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7 google IO keynote.

https://youtu.be/Y2VF8tmLFHw

developer keynote

https://youtu.be/EtQ8Le8-zyo

2010년 1월 이직하는 중간 쉬는 짬에 서칭 페스티벌을 참석하여 2박3일 행복한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성가대원으로 몇십년을 하고 여러 합창단, 중창등을 하면서도 정작 이런 세미나에 참석해본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것 같네요. 비전공자, 생업인으로써의 한계이겠죠..


그러다 지난 연말부터 결원이 생긴 성가대를 임시로 맡다가 올해 정식으로 임명을 받아버리는 사태를 당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시간이 맞아버린게 이번 더블레싱 세미나였습니다. 사실 며칠전 보고 바로 신청해서 뭔지 알아볼만한 틈도 없이 그냥 참석했더랬습니다.

하루짜리에서 뭐 얼마나 큰걸 얻겠어? 라는 가벼운 맘으로 참석했었지만 참 귀하게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현 성결교회 1층 홀은 이런 세미나를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할만큼 너무나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합창 공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잔향과 무대 구성, 좌석 배치등은 시범 합창단을 비롯해서 보컬 시범까지도 모두 좋았네요. 리딩세션의 회중 찬양도, 시범합창단의 무대 공연도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제 좌석이 사이드의 가장 앞 자리였음에도 별 불편을 못느꼈네요.


첫 시간 원학연 교수님. -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 상임이시더군요. 

역시나 강연중에도 '우리애들'하는 말씀 자연스럽게 자주 나오시길래 어느분이시길래 했는데 역시나.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비전공자이고 이제 갓 지휘를 맡은 새내기이지만 그간 해온 부지휘로써 해온 파트 연습들과 대타 경험들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동일한 주제들을 언급해주셨기때문인것 같습니다.


1. 아무리 바빠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하자.

2. 시창 연습은 긴 흐름을 가지고 계속 하자

3. 음정을 잡으면 발성도 잡을 수 있다.-개인 발성이 아니기 때문.


특히나 시창(독보)와 무반주 연습을 해서 발성과 음정을 같이 잡자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제가 생각해온 리허설 방식이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되어 얼마나 자신감 충만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합하세의 지휘자 청빙 조건 중에 종종 성악 전공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고, 저희 교회에서 청빙시에도 전공을 성악으로 정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악가를 지휘로 청빙했다고 대원의 발성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또 설사 그러한 성악 발성을 몇사람 가르쳐서 성공햇다고 해도 합창 발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잘 불러준다고 대원들이 듣고 발성이나 음정이 느는것도 아니고요..


지휘자가 잘 듣고 음정을 맞추고 악보를 보고 머리로 생각해서 그 음을 짐작할 수 있고, 몸이 기억하는 음정이 그 음을 낼 수 있도록 하고, 내 소리뿐 아니라 피아노에 끌려가지 않고 내 소리를 내고, 내 주변의 소리를 듣고 피치를 맞추도록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음정 집어서 계이름 불러보는 것은 지난주일부터 바로 시도했고 아주 좋아하시더군요. 이전엔 미리 화이트보드에 음계를 그려놓고 따라 하는것이었는데 원교수님 알려주신 방식으로 하니 아주 수월하고 재밌게 해볼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기는 내년쯤엔 한 옥타브정도는 어떤 조에서도 부를 수 있도록 우리 성가대가 훈련되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두번째 홍정표 교수님.

다른 것보다 5년이 고비다, 10년은 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말씀에 많은 찔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금년 임명 받으면서도 수많은 전공자들이 있고 청빙할 여건이 되는 교회임에도 제가 맡은건 너무 서두르지 말고 버퍼의 시간 동안 맡고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보자는 의미가 있어서 1년 정도만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그게 저에게도 대원들에게도 얼마나 안 좋은 생각이었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능력 밖이 아니라면 적어도 몇년은 이끌어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역시 처음 지휘 시작하실때는 발성 위주로 하였으나 그 성과를 얻는건 엄청 어려웠고 곡과 같이 가야한다는 유사한 말씀을 하셨네요. 두시간 채 안되는 시간에 15곡을 보신다는 리허설에 대한 방식은 사실 쉽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당장 이러한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정도 수준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한시간동안 세곡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ㅠ.ㅠ.

초견을 키워서 파트연습을 줄이자는 제안은 저도 계속 생각하는 바인데 그만큼 실력을 늘리는게 쉽지 않겠죠.. 개교회에서는..

제가 적어놓은 티믕로는 연습템포, 연주템포는 다르니 두가지를 잘 구분해서 리허설을 하고 빠른 노래의 경우 자음이 먼저 튀어나도록 해서 발음이 분명해지고 리듬을 살리도록 ..


세번째 민인기 교수님

대원의 구성을 먼저 말씀하셨는데 이점 역시 제 당면 과제이기도 하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파트의 인원배분은베이스 40 앨토 30 소프라노 20 테너 10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정도면 볼륨으로는 30 20 30 20 정도가 될 것 같네요. 그러나 실제는 10 20 50 20 정도의 볼륨이 저희 현재 상황이라서 이에 대한 배분을 어찌 할지 고민입니다. 특히나 신체구조상 베이스 찾기가 어려운데 음색을 베이스 스럽게 어떻게 훈련할지, 엘토를 엘토음색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건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구요.

두번째 지휘자가 찬양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도 위와 같은 이유로 크게 공감이 갔네요.

악보의 틀에 얽매이지 말자는 말씀에도 크게 동의합니다. 그럴려면 더 공부하고 견문을 넓혀야 할텐데 하는 숙제도 같이 얻게 되었네요.

악상은 처음부터 정하고 가자.

끊었으면 설명을 하라 는 두가지 말씀은 대원들에 대한 배려와 소통의 의미로 가장 중요한 리허설 테크닉과 애티튜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부터는 내용 필기는 안하고 리딩에 집중하느라...


네번째 김보미 교수님.

대단한 카리스마.. 준비해오셔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단은 분명한 소신과 해석을 항상 하실것 같다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역시나 악보에 얽매이기보다 정확한 해석을 하자는 말씀이 기억이 남고, 무엇보다 같이 해준 합창단의 블랜딩이 좋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권영일 교수님

일단 월드비젼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앞자리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소리가 정말 잘 훈련되어있음이 아이들의 입모양을 보고 알겠더군요. 정확한 사이즈, 정확한 싱크의 입모양을 보고 있자니 소리까지도 그렇게 정확하게 나올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반주곡이든 반주곡이든, 율동곡이든 정말 딱 맞는 이유가 이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 중간 공간에 딱맞는 음정에서 증폭이 되는 (배음이 쌓여져서 만들어지는 볼륨감) 소리를 들으면서 전율이 오더군요.

아쉬운건 두곡의 부활절 리딩 시간은 시간부족과 양이 많아서 많이 못 불러보고 못들어봐서ㅠ.ㅠ.ㅠ.


이선우교수님

저희 교회 세미나도 합창단과 같이 오셨고 이전 세미나에서도 강의를 들어서 친근한 느낌이 먼저.. 시간 부족으로 자세히 하지는 못했지만 곡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해석의 유무에 따른 시연도 좋은 시도였던것 같습니다.

몇몇 단원들의 경우는 얼굴이 낯이 익어서 더왠지 친근하게 느꼈던것 같네요.


아쉬운 점.

1. 역시나 전기음향..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음악 세미나에서의 마이크는 애물단지입니다. 반드시 써야하나, 걸리적거리지 않게 사용하기는 어려운.. 이날도 마이크 스탠드의 걸리적거림이나 유선마이크 사용으로 인한 것들로 사소하게 진행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더군요. 다행인건 홀 사이즈가 적당해서 합창에는 확성이 필요없었다는게 천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2. 리딩 세션

모든 선생님들이 시간 분배에 어려움을 겪으신듯.. 특히나 도입부만 불러보고 마는 곡들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핵심이 되는 부분들을 두세군데 볼 수 있었으면 어떨까 싶더군요. 곡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좌석에 대해..

아예 좌석 배치를 파트별로 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 굳이 안 모여 앉아도 크게 불편함은 없는 분들이 참석하시긴 하지만 나중에 먼저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리딩에서 발란스 잡기가.. 파트별로 모여 있으면 웬지 모를 동질감도.. 

그리고 특히나 여성분들은 워낙 소프라노가 많아서 앨토 음듣기가 어려워서 아쉬웠습니다. 파트별로 앉으면 강제라도 앨토를 해주시기 않았을까 하는 ..


2.5만원 내고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해주신 분들에 감사하고 함께 하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 그렇네요.

여튼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피곤 풀어야 하는 주말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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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집안에서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인 부딛힘이 있었다. 물론 다들 잘 이해하고 합의가 되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지금 세대에서의 십일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한번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좋은 글을 보게 되어 옮겨 놓고자 한다.


박윤선 목사님이 1950년대에 노회에 제출하고자 작성한 이 작은 논문을 읽고 있자니 정말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였을 당시의 신학풍이 작게 나마 느껴지고 오히려 작금의 교회 신학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까지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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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일조 헌금과 그 사용방법에 대하여

이 작은 논문은 지난 번 부산 노회시에 노회원들 중에서 질문한 문제를 해답하기 위한 것이다. 노회의 부탁으로 이 연구를 발표한다. 그 질문 내용은 이렇다. 곧

문 의 서

주후 1956년 9월 4일

문의자 씨 명(약)

 

부산 노회장 귀하

하기와 같이 문의하오니 성경적으로 지시하여 주심을 경요하나이다.

교역자 및 교인의 십일조 헌금으로 본 교회에만 전부 헌금하는 것이 가한지 혹은 하기 사항에 사용하는 것도 가한지 지시하여 주심을 요망하나이다.

1. 교회 월정 헌금

2. 교회 주일 헌금

3. 성전 건축 헌금

4. 개인 구제 헌금

5. 개인 특별 감사 헌금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답함이 좋은 줄 안다.

 

1. 십일조 헌납은 구약 시대에 신정국가의 하나의 제도화한 것이었느니 법령으로 실시하던 것이었다. 그것을 드리는 자가 기쁜 마음으로 실행해야 향기로운 것이겠지만 아니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 난 자를 바치는 것도 아니하면 벌을 받도록 된 것이다(출13:13).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신약의 시대의 연보는 신정국가의 법령으로 실행시키는 것이 아닌 만큼, 자원하여 내는 것이다(고후8:1-15, 특히 11절 참조)

 

2. 십일조를 사용하는 목적은 주로 (1) 레위 족속과 제사장들의 생활비를 제공하기 위함(민18:24,26,28). (2)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같은 외로운 자들을 구제하려 함이다(신14:22-27). 그러므로 신약 시대도 신자가 연보의 일부를 가지고 빈자나 외로운 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롬15:25-26).

 

3. 이제 다시 생각할 문제들이 있다. (1) 신약의 시대에 연보하는 자가 그 소산의 십분지 일이란 수량을 유일한 표준으로 할 것인가? 십분지 일이란 수량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바친 수량이었고(창14:20)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 족속에게 그렇게 바쳤으니만큼 역사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이상적 수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교회는 신정국가의 법령으로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고 의문과 기타 외부적 의식의 제재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초월하게 된 영적 단체이니 만큼 십분지 일이란 수자의 법령적 제재는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십분지 일이라는 수량이 이상적인 수량이니 만큼 그것을 신약 시대 신자들도 자원하여 표준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교리화하거나 제도화할 것은 아니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원하여 소득의 십분지 일 이상도 하나님께 바침이 좋을 것이다(고후8:1-15). 교회는 신약 교회는 교인들이 연보하는 일에 십일조 혹은 십일조 이상을 강요하거나 표준을 세워 지령할 것은 아니다. 장로교 예배 모범 제 18장 4조에 말하기를 "목사마다 자기 교회가 감심으로 헌금하는 습성을 배양하는 것이 마땅하니 신도마다 다소를 물론하고 자기 힘 있는 대로 바치게 할찌니라"고 하였다.

 

(2) 신약 시대의 신자가 자기가 드릴 연보 수량(십일조 혹은 기타 수량)의 사용 목적을 자의 대로 생각하고 또한 자기 목적에 따라 활당하는 것도 자유로 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장로교 예배모범 18장 3조가 대답한다. 거기 말하기를 " 그 수납금은 당회의 감독하에서 교회 각 대리국과 기타 자선 사업과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분배할 것이니 분배 다소와 일체 계획은 시시로 의결하되 혹 헌금하는 자가 특별한 소원히 있을 때에는 그의 원을 따라 삼가 실행할찌니라"고 하였다. 요컨대, 신약 시대의 연보는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자가 자의대로 또는 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고후8:11). 구약 시대에는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게 되어 있었으니만큼(요4:19-21) 외부적 제도에 치중하였다. 그러니만큼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헌금에 외부적 제재를 방았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신자들은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또는 어디서나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할 수 있다는데(요4;22-24) 치중한다. 신약 종교는 보다 더 영적인 것인 만큼 신자의 개인적 자유를 존중시하며(고후3;17) 자기 혼자도 하나의 성전인 사실을 성경에서 알고 있다(고전 3;16-17,6:19-20,롬12:1-2).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에서 어떤 개인들(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일종의 연보 행위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교회를 통하여서만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 친수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 것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다(행10:1-4). 잠19:17절에 말하기를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잠17:5참조. 마10:42에 말하기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바리새 교인이 하나님께 재산을 바쳤다는 미명으로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을 책망하셨다(마15:4-6). 약1:27엔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서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마25;31-46참조.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께 바칠 물질을 가난한 자 구제의 목적(기카 하나님께 바치는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지령없이 사용할 수 있다.

 

(3) 우리는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등한히 하면 안된다. 교회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항존 단체로서 복음을 전하며 보수하는데 가장 믿을만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 전도와 복음 파수를 위하여서도 교회는 이렇게 귀한 기관이다. 그러니맘큼 이 기관엔 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신자가 다른 좋은 일보다 교회에 물질을 바쳐야 된다(눅8:1-3,빌4:18). 구약 시대에도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성전 봉사와 제사장의 생활비로 제공한 것이다. 그만큼 그때의 신자가 하나님께 직속한 거룩한 일을 위하여 물질적으로 힘껏 봉사하였다. 이 일은 고금을 물론하고 원측에 있어선 변하지 않는다. 출23;15에 말하기를 "공수로 내게 보이지말찌니라"고 하였다. 신16:16참조. 신약 시대에도 신자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보 드려야 할 것을 가르친다. 다만 그 수량에 있어서 일정한 숫자 표준은 세우지 않았다.(Cassels Concise Bible Dictionary P.728. under new economy liberality enjoined on christians. No specific proportionof the earnings is mentioned......). 십일조 헌납에 자세하였던 바리새인들에게 대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종교 윤리적 동기는 없이 외식으로 그러한 점을 꾸짖으셨다. (마23;23, 눅11:42).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 헌납하는 그것은 좋게 여기셨다. 이 점을 보면 예수님의 교훈이 십일조라는 숫자를 표준으로 세우신 듯하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해석하고 읽어야 한다.

 

해석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 (1) 그가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아직 그의 구속 사업이 완성되지 않은 것만큼(죽었다가 다시 살으시기 전이므로) 구약적인 제도를 아직 그대로 옳게 보신 시절이었다. 마8:4참조. 이점에 있어서 놀발 켈덴회이스(Norval Geldenhuysl)의 누가복음 (11:42) 주석 제 342페지를 참조하라.

 

 

(2) 그리고 둘째 해석은, 그 귀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고한 말씀(눅11;42)은 십일조의 바리새식 실행 그대로를 용인하시는 말씀이라기보다 그것에 대한 원측적 실행(숫자를 기계적으로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 정성껏 바침을 의미함) 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을 밝혀 해설한 사도들의 서신들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를 어떤 일정한 수량으로 제도화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의 교훈이, 십일조와 같은 구약의 예식적 규례도 아주 폐지하시지는 않고 그것에 대한 신약적 실행(즉 원측적 실행)을 필요시한 것은 사실이다(H.N. Ridderbos, De Komst Van Het Koninkrijk .p.264-265).


월요일은 새벽 출근해서 주간 업무 회의 준비, 회의, 업무 처리 하다보면 언제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보내는 날입니다. 다행히 새벽부터 설치는 덕에 진이 빠져서 일찍 들어가는데 틈을 노려서 정모 공지가 떳네요.

장마비가 시작하는 시점이라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여의도 침례교회 도착.

다행히 강동 서식이지만 직장이 일산 초입 행주대교 북단이라 막힘없이 갔네요. 그럼에도 늦은 이유는 퇴근 길에 불쌍한 신입 인턴 사원들 배달 하느라...

 

여튼 도착해서 전화하니 옆건물 망향 국수.. 망향이라니.. 이거 체인점 시작하게 된게 저희 교회 사무장하시다가 망향 국수 지점(본점은 연천에 있고 권사님이 따님) 대박 내면서 된거라 괜히 반가운데..

식당 들어서니 이거 식당 전세 내셨군요...ㅎㄷㄷㄷㄷ 테이블 2/3 점유하고 시끌벅적..

인사하기도 민망해서 인사 못하고 잽싸게 빈자리 착석. 아마 주문하고 많이 기다린듯 해서 쉽게 나올 비빔 주문 했더니만 제일 먼저 나와버리네요. 이거 대충 조금씩 덜어서 갯수 맞추신건가..

후루룩 하고 본당으로 다시 이동.

 

본당 4(?) 가서 발코니 중앙에 위치한 하우스 근처에서 데모 음악 들어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교회 음향(!)모임이니.. 사실 본당은 십년도 넘게 전부터 우리 대삽님의 초대로 오던 곳이고, 갖은 추억들이 담긴 곳이었죠.

 

마이크 비교도 하고 .. 개인적으로는 잠깐 음향업계 담았을때 저희 믹서를 구매해서 납품 등으로 다녔었구요. 그런데 기억속에 있던 본당은 상큼하게 지워버려야겠더군요. 적벽돌에 클래식 하기 정말 좋아 보이던 건축음향과 이를 커버 하고자 메인스피커 펑션원 외에도 무대쪽의 k-array 스피커들을 도색해서 설치하고 딜레이 스피커들도 상당히 있었는데 그러한 기억들은 정말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찍어 놓은거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쥐..

다행히 증거 사진들이 곳곳에~~~

 

스피커 숨기기 사진들 역시 교인 분들 중에 미술전공자분이 헌신하신걸로~~

 

리모델링 후의 본당은 예전 고풍스러운 이미지는 완전히 벗어버리고 마치 방금 신축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음향은 잔향 0.7초라는 값을 얻을 정도로 처리했더군요. 신기한건 그럼에도 부자연스러움을 거의 느끼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이정도면 먹먹하다거나 답답한 느낌이 느껴질텐데 그냥 소리질러 보아도 적당하게 떨어져 주는 잔향 때문에 오히려 깔끔함을 느낄 있었습니다.  목표하신게 목사님 스피치가 가장 우선이다라고 하셨다는데 그점은 지금껏 돌아다니면서 어디서도 듣지 못한 스피치가 나올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데모음악 먼저 즐거운 맘으로 들었습니다. 중층에서 들어본 소리는 충분한 음압, ? 좋은데? 역시 펑션원~~ 이러고 있는데 알고보니 예전 쓰던 Res4 리퍼제품이네요.   잊버리긴 했지만 Res4 부드럽다(나쁘게 말하면 까랑까랑한 고역 부족, 새거는 별로 못듣고 맨날 낡은 녀석들만 듣다보니)였는데 생각보다 고역이 있어서 뭔가 했는데 리퍼의 능력이지 않았나 싶네요. 새제품으로 재탄생. 저역은 매립된 메인 우퍼가 그대로 날라들어오는 느낌. 중층에서는 지역마다 음압차이가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벽쪽에서 뭉쳐 들어오는 느낌? 타고 들어오는건가? 싶었네요.

 

여튼 우리의 관심사는 중층이 아니니 내려가서 펑션원 에보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역시 좋네요. 음색이 이전 펑션원과는 다르다는 의견들이 있었고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거야 토니옹 취향이 바뀌는 것일지도~~ 중층에서는 우퍼가 크다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본당에서는 적절했습니다. 벽면에서 조금 뭉치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정도야...전체적으로 좋은 발란스  어디를 가도 균일한 음압. 메인 스피커가 커버할 곳과 딜레이들이 담당할 곳을 확실히 나눈 느낌. 어쿠스틱의 확실한 보강으로 인해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소리들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소리가 깔끔하게 떨어져주네요.

보통 이렇게 흡음처리를 경우는, 특히나 이렇게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인 경우, 설교자의 경우 분명히 어색함을 어찌할 없을 건데 어찌 처리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런 경우 강대상위에서의 모니터 스피커 처리가 어찌 될지 ... 생각엔 요새 경향에 어울리지 않게 좁은 듯한 무대라는 생각을 했는데 덕분에 모니터 스피커를 매립해서도 전체 무대를 커버하게 되었더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강대상에서의 이질감이 거의?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심지어 강대상 위에 놓인 직접음용 미니 사이즈 스피커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들리니 정말 좋네요. 그리고 모니터와 메인 스피커의 음색이 통일  되는 느낌이라서 메인을 켤때, 끌때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건축음향으로 커버가 덕에 부채꼴임에도 되돌아와서 모이는 소리가 없는 것도 좋은 요인이 되어 같네요.

 

밴드쪽 무대는 인이어(역시 우리의 베링거) 깔려 있었지만 덤으로 재활용 스피커들도 바닥에 매립되어 있습니다. 믹싱만 한다면 무대 위의 적절한 앰비언스와 인이어의 조합이 가능하겠더군요. 지만... 생각엔 메인 소리가 어느정도 떨어지기때문에 굳이 사용할 싶네요..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고~~

 

성가대에서 인상 깊었던건 성가대 모니터를 별도 두지 않고 좌석은 예전에 쓰던 쉐도우 스피커(케이어레이) 재활용해서 붙이고 뒷쪽은 천정 쉴링 스피커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굳이 사이즈 여기저기 다는 보다 나아보였습니다. 물론 성가대 천정이 낮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으면 지향성이 거의 없는 쉴링 스피커 특성상 엄청 지저분해질 있으니 말이죠.  성가대 마이크 역시 숍스와 어쓰웍스의 조합으로 구성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나 스탠드형으로 쓰이는 어쓰웤스(아마 FW730?) 명성은 자자하더군요. 어느분이 8자라고 하던데 홈피에서 확인한건 카디오드 타입과 수퍼카디오드의 두가지 모델이 나오네요. 8자로는 이렇게 명성 얻기 어려웠을듯..

영상은 정말 가격대 성능비 최고로 구성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상계의 베린져? 블랙매직을 기본 시스템으로 구성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각종 컨버터, 자막기, 스위쳐 장비를 랙에 쌓아 놔야 하는데 방송실 옆에 있는 영상 랙을 보니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스위쳐와 컨트롤러를 기본 조작 시스템으로 가져가고, 디지털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딜레이 문제를 해결하는 장비가 있었던듯. 요새 유행하는 LED보다 유연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활용한 무대 화면 구성으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데모 화면은 외주 제작 답게 모두들 많이 보셨겠지만 너무나 어울리게 송출이 되었었구요. 아직은 예배때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담 인력 채용되고 운영 방식이 정해지면 정말 아름다운 예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적어도 행사 예배때는 정말 부러운 화면 나올듯.

 

이렇게 두어시간 시스템을 즐겨보고 FOH 모여서 단체 사진 찰칵.

그리고는 교육관 메인 홀로 이동해서 질의 문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이날 정모의 핵심은 항상 그렇듯이 탐방후 질답 시간이죠.

저는 건축이든 음향/영상 시공이든 항상 교회의 실력만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체가 와도 좋은 컨설턴트가 와도 결국 교회의 수준만큼 되더군요. 그러니 여의도 침례교회의 수준만큼, 교인들의 수준만큼을 우리는 보게 된거죠. 인상의 90%? 보낸 교인으로써의 대샵이 있고, 교회를 알고 업계를 아는 이가 메니징을 하고 본인의 모든 역량을 다해 업체와 컨설턴트들, 설계, 감리를 모았으니 자체로 드림팀이 되어버린거죠.  사실 통합제어, 음향, 영상, 조명 등의 장비 구성과 운영 방식을 보면 이미 교회에서 요구하는 바를 알고 있고, 교회가 모르는 것들은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아이디어를 내놓고 가치를 교회가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최적화(가격대비해서도)되어 가는 과정이 있었을 같습니다.

 

이러한 교회 탐방에서 가장 흔히 하게 되는 오해가 이정도 규모의 예산이면 이정도 있는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문답시간에 얘기해준것처럼 교회의 케이스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맞을 같습니다. 이는 교회가 덕이 되게 했느냐 안했느냐와는 무관하게 교회의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탐방을 통해서 얻어가는 것은 많이 공부하고 많이 준비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전업으로 교회일 하는 이들이 많지 않는 한국 교회 상황에서 봉사자로 교회 시공을 조율하는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주소에서 처음 운영진으로 활동하게 되었을때는 저희가 직접 컨설팅에 무료 시공까지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형편이 되는 교회 분들의 부탁이 들어오면 좋은 컨설턴트를 선정하셔서 작업하시면 좋겠다라고 항상 말씀드리곤 했었는데, 어느순간 컨설턴트라는 명함으로 교회를 젖고 다는 분들이 생기더군요. 교회의 복잡한 내부 사정들, 사정들을 파고드는 업체와 컨설팅 업계, 아무 소리 내지 못하는 방송실 봉사자.. 이러한 조합이 망하는 교회 공사의 표본이 되겠죠. 여의도침례교회는 이와 반대되는 준비가 교회였었던거죠

사실 대샵이 부러운건 저도 실력을 키우고 준비해서 우리 교회가 정말 필요할때 이런 결과물을 내놓을 있는 환경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건데..ㅎㅎ

 

죙일 쏟아지던 장마빗 속에서 강동파(라고 해봐야 동준집사님과 집사님 팬인 명성교회분) 셋이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명성교회 방송실은 봉사자 한분 생겼고~~ㅎㅎ

 

아마 2000년정도부터 하주소 재모임 시작했던것 같은데 15년이 넘게 지나서도 여전히 모일 있다는게 하나님의 은혜다 싶습니다. 모임의 리더분들도 참석해 주시고 처음뵈는 분들은 분들대로 반갑고, 간만에 만난 여러분들은 그대로 반가웠습니다.

 

하주소라는 모임이 항상 그자리에 그러한 모습으로, 변함없이 지키고 있음으로 누구나 찾고 싶을 찾아갈 있는 그러한 모임으로 남았음 좋겠습니다. 이제 한살두살 먹어가고 회사일로 여러가지 상황으로 바쁜 중에서도 이렇게 모임들을 찾아주고 수다를 떨며 정보를 풀어주는 고수분들, 열정을 가지고 낯선 곳을 찾아주시는 모든 회원  분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힘든 교회 방송실 사역을 어찌 있겠습니까? 모두들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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